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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회복수기

다사랑중앙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의 가족분들이 보내주신 생생한 경험담입니다.
알코올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치료의 조력자가 되어 가정의 평화를 되찾으신
알코올중독자 가족들의 회복수기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알코올 중독 가족들에게 큰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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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알코올 중독 가족수기] OOO씨를 아시나요?
등록일 2021-02-09 조회수 309 이름 다사랑
첨부파일 2019-가족수기_썸네일.jpg

[2019 가족수기 공모전 참가상]

 

OOO씨를 아시나요?

 

○○

 

계속 이렇게 술 퍼마시다가 우리도 김ㅇㅇ씨 만나게 된다.”

푸하하하 그러게, 언니 우리는 다사랑중앙병원 9층에서 만날 듯~”

 

그는 떠들썩하게 술잔이 오가며 흥청대는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앉아 오가는 시덥잖은 농담에 유쾌하게 참여하며 그 자리를 지킨다. 아무도 그에게 술을 권하지도, 미안해하며 눈치 보지도 않고, 그 또한 원래 그랬던 사람처럼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이번이 두 번째다. 걸려온 올케언니의 전화 속 목소리에는 이미 체념과 원망이 섞여 있다. 그럴 것이다. 수십 년 술 수발을 들어 온 언니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첫 번째 전화를 받고 갔을 때 그는 온몸이 개나리꽃처럼 샛노란 물골을 하고 퀭해진 눈을 간신히 뜨고 뭐 하러 왔어?” 라고 했다. 병원엔 죽어도 안 간다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그의 아내는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가까이 살면서도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이 지경이 되도록 몰랐다니. 너무 미안하고 마음 아팠다. 그동안 겪었을 올케언니와 조카아이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을까? 그 또한 생 어금니를 스스로 뽑는 등 여러 가지 착란을 겪으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다. 일을 할 때 그는 몸을 사리지 않고 꼼꼼하게 처리하는 사람이다. 매사에 성실하고 맡은 일에 빈틈이 없는 사람. 그러나 일밖에 몰랐던 그는 일이 없을 때의 시간을 쓰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니 생활에 묻혀 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방법으로 그는 술을 선택했고, 곡기를 끊고 밤낮없이 이어지던 음주는 스스로와 가족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우게 되었다.

 

알코올중독에 대해 무지했던 우리 형제들은 그저 그를 알코올로부터 잠시 떼어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공기 좋은 데 가서 소위 요양이란 것도 좀 하고, 몸 좀 추스르면 되는 건 줄 알았다. 실제로 알코올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발작을 일으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들어가기까지 했던 그가 알코올병원으로 옮긴 지 몇 달 만에 맑은 정신으로 퇴원했으니 우리 모두는 그것으로 완치되었을 거라 믿었다. 그때까지도 그는 스스로 술을 자제할 자신이 있으니 굳이 끊지는 않겠노라고, 일에 복귀하면 사회생활 하는데 술 없이는 곤란하다며 장담했다. 그리고 우리도 그러리라 굳게 믿었다.

 

1~2년 잘 지내는가 싶던 그였다. 두 번째 전화를 받고 달려갔을 때 그의 모습은 첫 번째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노숙인처럼 온몸에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는 것이 추가되었다. 스스로 칩거하던 컴컴한 방문을 열었을 때 그는 그냥 죽게 내버려 둬라고 했다. 누구의 어떤 설득도 안 먹혔다. 아무 희망도 없이 정말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짰다. 지난번 병원 말고 좀 더 전문적인 병원을 알아보고, 꽁꽁 묶어서라도 끌고 갈 궁리도 하면서. 다음 날 모든 준비를 마친 우리 특공대가 들이닥쳤을 때 그는 의외로 이러나저러나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순순히 그 과정을 따랐다. 첫 번째와 같은 순서가 이어졌다. 다사랑중앙병원에 입원 즉시 이어진 발작 그리고 대학병원 중환자실. 지난번 병원과는 다르게 그 과정을 우리가 다 치켜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조금 회복된 그는 마치 치매 환자처럼 자신의 사지가 왜 침상에 묶여있는지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물었다.

 

이게 뭐야?”

경련이 심해서 침대에서 떨어질까봐 잡아주는 거야.”

~”

이게 뭐야?”

경련이 심해서 침대에서 떨어질까봐 잡아주는 거야.”

~”

이런 식의 무한 반복은 좀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긴 밥을 안 준다.”

진짜? 내가 얘기 좀 해야겠네.”

저기 저 여자한테 말해야 해.”

? 누구?”

저기 까만 옷을 입은 여자가 여기 담당이야

그래? 저기 아무도 없는데?”

~어제도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저 사람 집에 가서 한잔하고 왔는데... 저 여자가 우릴 감시하잖아.”

~그랬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주위를 휘 둘러 보지만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진다. 아까 오빠가 밥 안 주냐는 무한 반복 질문에 OO씨 방금 식사하셨잖아요.” 하던 간호사 선생님조차 안 보이는 데 도대체 누굴 말하는 건지.

아무도 없는데, 그 사람 이름은 알아?”

그럼~ㅇㅇ이야. ? 없네.”

 

중환자실에서 나온 그는 휠체어를 타고 다사랑중앙병원으로 옮겨졌다. 스스로 걸을 수도 없는 지경이 된 그를 보는 우리의 마음은 착잡했다. 걸어서 나올 수 있을까?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의사 선생님조차도 그가 몸만 좀 회복해서 나가도 다행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병원 생활에 잘 적응하며 자신의 상태를 완벽히 파악한 그는 이제 전과는 생각이 달라졌다. 알코올중독은 혼자 노력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암이나 그 밖의 불치병처럼 평생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일종의 질병임을 깨닫게 되었다.

 

면회 갈 때마다 눈에 띄게 좋아지는 그의 상태를 보며 우리는 안심했다. 그러나 첫 번째 실패의 기억이 떠올라 마냥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선 그가 집중할 이 필요했다. 오십 대 후반으로 접어든 그가 재취업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 같았다. 퇴원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 후에 그가 살아가야 할 방법이 필요했다. 우연히 언니 친구가 오빠의 상태와 성실성을 인정하고 자신의 회사에 받아주었다. 그는 아직도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 일을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남은 또 하나의 문제는 일하고 남는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자기만의 소일거리가 필요했다. 손재주가 좋아 뭐든 잘 만지는 그를 주말마다 온 식구들이 불러댔다.

 

오빠, 가게 공사해야 해~ 와서 해줘.”

삼촌 우리 집 전기가 자꾸 말썽이야

심지어 친구들까지도 그를 불러대는 통에 그는 주말이 늘 바쁘다. 일본, 베트남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시간을 내어 산행도 자주 다닌다. 잊고 있었던 그의 취미 생활을 이제야 즐기게 된 것이다. 나는 요즘 그에게 과거 이력을 되살려 취미 삼아 가죽공예를 시작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나이 들어서 가죽 공방 같은 거 하면 좋잖아~”

우리는 이제 식구들이 모여 술 한 잔 할 때 그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온갖 술을 섭렵한 고수답게 이것저것 권하기도 하며 유쾌하게 자리를 지킨다.

그런데 김ㅇㅇ씨가 누구야? 기억은 나?”

아니, 전혀

그때의 기억을 싹 지운 채 원래 처음부터 술을 먹지 못했던 사람처럼 잘 살아가고 있는 그를 우리는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