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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랑중앙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의 가족분들이 보내주신 생생한 경험담입니다.
알코올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치료의 조력자가 되어 가정의 평화를 되찾으신
알코올중독자 가족들의 회복수기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알코올 중독 가족들에게 큰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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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알코올 중독 가족수기] 알코올과의 소리 없는 전쟁
등록일 2021-02-09 조회수 319 이름 다사랑
첨부파일 2019-가족수기_썸네일.jpg

[2019 가족수기 공모전 참가상]

 

알코올과의 소리 없는 전쟁

 

○○

 

우리 누나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누나는 어렸을 때부터 활발하고 적극적인 학생이었다. 예쁜 데다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항상 인기가 많았었다. 또 주말에 쉬는 날이면 가끔 음식을 손수 만들어서 나눠 먹는 인정도 많은 누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누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세상 일이 늘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듯이 결국 집에서 가까운 국립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엄마가 말하길 누나가 술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은 이때부터라고 했다.

 

우리 누나는 특히 막걸리를 좋아했었다. 어쩌다 누나의 방에 들어가면 옅은 막걸리 냄새가 났고, 서랍에서 빈 막걸리 병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막 대학에 입학한 20대 청춘에게 술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리고 술은 누구나 마실 수 있으니까. 다름 아닌 나 역시 술을 마시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나는 가족들이 모르는 사이에 점점 술 문화에 빠져가고 있었다. 밤마다 거실에서는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났다. 누나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부모님과 다툼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들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아 예민해졌다. 내가 지금도 후회하는 것은 이때 누나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내가 누나에게 먼저 찾아가서 말을 걸었더라면 상황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누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던 고등학교 때 마음껏 놀지 못했던 것을 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늘 부모님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로 살았던 누나는 술을 통해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은 그런 딸을 늘 안쓰럽게 여겼다.

 

누나의 술에 대한 집착이 절정에 달한 것은 내가 군대에 갔을 무렵이었다. 내색하지 않으려 하셨지만 전화로 듣는 아빠와 엄마의 목소리에는 항상 근심과 걱정이 묻어있었다. 군대에서 간간이 접하는 가족의 소식이 항상 술에 대한 이야기이니 나 역시 짜증이 나고 한편으로는 걱정되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누나는 항상 술을 먹지 않겠다고 부모님과 약속을 했지만 이미 알코올에 중독되어버린 누나는 스스로도 절제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했다. 부질없게 맺은 연약한 약속이 깨지면 깨질수록 부모님은 누나에게 실망했다. 이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된 나는 알코올과 마찬가지로 무관심 역시 가장 무서운 것임을 깨달았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나는 누나와 연락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이를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치명적인 독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시작하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누나는 반듯한 직장을 가지지 못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 쌓이는 스트레스, 하나둘씩 취업을 했다는 친구들의 소식을 듣고 밀려오는 자괴감과 불안감,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현실, 부질없는 잔소리같이 들려오는 부모님의 말씀들. 안타깝게도 누나는 이 스트레스를 오직 술로만 풀어갔다. 부모님 역시 그런 딸을 보면서 속이 타들어 갔을 것이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했던 부모님은 늘 누나를 타이르기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울증과 불면증까지 걸려 하루하루를 아무런 의미 없이 멍하니 누워있던 누나를 보던 부모님은 결국 누나에게 병원에 가보자는 제안을 했다. 누나는 그냥 술을 먹는 것 가지고 별 야단법석을 다 떤다며 싫어했다. 하지만 결국 못 이기는 식으로 병원에 가게 되었다.

 

병원에 가니 의사 선생님이 하시는 말은 뻔했다. 전반적인 상태와 함께 간이 좋지 않으니 당분간 술을 먹지 말라고 하셨다. 오랫동안 술을 마셨으니 지극히 당연한 소리였다. 그렇게 일주일간 금주를 했지만, 우울증과 불면증이 함께 찾아와 고통스러운 나날만이 계속될 뿐이었다. 그런 누나를 보다 못한 엄마는 아르바이트라도 다시 하라며 누나를 재촉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가 늦게 끝난 어느 날 누나는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왔다. 가게에서는 아르바이트 도중에 술을 마셔서 더는 일을 맡기지 못하겠다고 직접 연락이 왔다.

 

이런 누나의 행동에 크게 실망한 엄마는 참다못해 더 이상은 너와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으니 독립해서 마음대로 살라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는 누나가 알코올 중독이라고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TV에서나 보던 알코올 환자들의 전형적인 증상이 지금 소중한 딸이 보이는 행동과 일치함을 부정하고 싶었다. 맞벌이를 하는 터라 딸에게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며 엄마는 늘 스스로를 자책했다. 아빠 역시 누나를 보면서 화를 냈고 한숨을 쉬었다. 결국 누나의 술에 대한 집착이 도저히 가족이 말릴 수 없을 정도까지 다다르자 아빠는 알코올 치료에 특화된 병원을 찾아냈다. 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자신이 알코올 중독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누나는 완강히 입원하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설득 끝에 결국 누나는 다사랑중앙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누나가 말하길 병원 생활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고 했다.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없는 데다 본인의 노력을 요구하는 확고한 규칙이 정해져 있었기에 지금껏 누나가 살아온 방식과는 맞지 않았을 게 당연했다. 초반에는 다시 입에 술을 대고 마는 등 적응하기 힘들어했지만 1, 2달이 지나자 놀랍게도 누나는 천천히 나아지고 있었다. 퇴원하고 난 뒤 규칙적인 생활과 함께 건강한 식단, 무엇보다 금주에 대한 본인의 의지를 실천해가면서 누나는 지금도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누나의 병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면회까지 왔었던 남자친구까지 생겨서 매일 매일을 즐겁게 보내고 있다. 저녁이면 항상 혼자서 술을 마셨던 누나는 이제 남자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간다. 동생인 내 입장으로는 참 부럽고 고마울 따름이다.

 

사람은 아프면 대부분 알아서 병원에 가지만, 알코올에 관한 부분에서는 스스로에게 한없이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다. 딱 우리 가족이 그랬었다. “설마 알코올 중독이겠어? 그냥 술 좀 마시는 것 가지고.” 하지만 우리 누나가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알코올 의존증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괜찮겠지 생각하고 방심하는 사이에 소중한 사람이 서서히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잔인한지는 오직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나는 우리 가족이 겪었던 아픔을 다른 누군가가 겪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건방져 보인다고 해도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알코올에 관한 질병은 절대로 혼자서 치료할 수 없다는 걸 말이다. 가족, 친구들과 같은 주변 사람들의 노력과 지원이 있어야만 치료가 가능하다. 만약 이 글을 보는 당신의 주변에 술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곧장 다사랑중앙병원과 같은 알코올 치료에 특화된 병원에 가라고 추천하고 싶다. 망설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알코올은 누군가에게 파고들어 소중한 일상을 망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우리 아빠와 엄마는 가끔씩 누나에게 장난식으로 한 잔 할래?” 같은 농담을 건네고는 한다. 그러면 누나는 됐다면서 고개를 가로젓는다. 예전 같으면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진기한 광경이다. 한때는 눈물과 한숨으로 밤을 지새웠지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지금은 따스한 봄이 찾아오듯 우리 가족에게도 다시 봄이 오려나 보다. 그렇게 술로 인해 잃어버렸었던 가족의 화목함을 되찾아가며 우리는 오늘도 알코올과의 소리 없는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