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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랑중앙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의 가족분들이 보내주신 생생한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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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알코올 중독 가족수기] 밥차 끄는 우리 아빠
등록일 2021-02-09 조회수 345 이름 다사랑
첨부파일 2019-가족수기_썸네일.jpg

[2019 가족수기 공모전 참가상]

 

밥차 끄는 우리 아빠

 

○○

 

나는 아빠가 술 마시는 게 싫다. 왜냐하면 아빠가 술을 마시면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데 혼자서 취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술에 취하면 목소리가 커지고, 말투도 달라진다. 나와 놀기로 해놓고서 약속을 못 지키고, 엄마 일을 도와주기로 하고서도 아무 것도 못한 채 있다가 이도 못 닦고 아무데서나 누워서 잘 때도 있다. 술 냄새도 고약하다.

 

내 기억에 아빠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저녁을 먹을 때 아빠 자리에는 항상 얼음이 띄워진 컵이 놓여 있는데 아빠는 그걸 물이라고 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는 그대로 믿었지만, 조금 커서부터는 아빠가 밥 먹을 때 술을 컵에 따라 두고 같이 마신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다섯 살쯤 되었을 때 일이다. 마을회관에서 잔치가 열렸는데 밥을 먹고 돌아와 아무리 기다려도 아빠가 오지 않았다. 슬슬 걱정되어서 엄마와 찾으러 갔더니 아빠는 술에 너무 취해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하며 집에 오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며 주저앉아 있었다.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속상해서 엄마와 함께 아빠를 부축해 집으로 데려갔다. 마을회관에서 집까지는 아주 가까웠지만, 계단을 올라가야 해서 많이 힘들었다. 계단은 겨우 올라왔지만, 풀밭을 걸어갈 때쯤 아빠가 벌렁 누워버려서 도저히 데려갈 수가 없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큰 소리로 얘기하고 등도 때리며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애썼지만, 아빠가 누워서 깔깔거리고 버티고 있으니 움직이게 할 수가 없어서 그대로 내버려 두고 들어왔다. 아직도 그때 캄캄했던 밤에 아빠의 휘청거리던 모습과 걱정되던 마음이 생각난다.

 

작년 봄, 우도에 여행을 떠나 아빠와 함께 올레길을 걸으며 재미있게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첫날 밤부터 아빠는 숙소에 묵은 다른 아저씨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셨고 결국 다음 날 일찍 일어나지도 못해 엄마와 나만 우도를 돌았다. 아빠와 함께 걷고 싶었는데 많이 아쉬웠다. 아빠는 다음 날 낮에도 혼자 술을 마셔 돌아오는 배와 차에서 계속 힘들어했다. 그런데도 그날 저녁 동네 아저씨와 또 술을 마시고는 아주 늦게 돌아왔다. 술 때문에 여행을 망친 기분이었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나를 정말 좋아한다. 다른 아빠들보다 친구처럼 함께 놀아준다. 배드민턴을 치고, 축구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바닷가까지 다녀오기도 한다. 너무 신나게 놀아주다 여기저기 다치거나 아플 때가 있을 정도다. 책도 잘 읽어주고, 인형놀이도 해준다. 아빠랑 같이 하면 보드게임도 바둑도 재미있다. 아빠는 심심할 때 아무데서나 손가락으로 제로게임도 잘 하고, 차를 타서는 끝말잇기도 오래오래한다. 그런데 이런 아빠가 요즘에는 내 곁에 없다.

 

작년 추석을 함께 보내고 아빠는 잔뜩 짐을 꾸려서 다사랑중앙병원에 입원했다. 처음에는 연락도 안 되고, 편지만 쓸 수 있었다. 내가 아빠에게 전화를 하면 연결해주는 아저씨가 받아서 ?? 선생님, 전화 왔습니다!”라고 방송을 해주었다. 그러면 계단을 올라오는 아빠의 발소리가 들렸고 아빠는 헐떡이는 숨소리를 냈다. 하지만 전화할 때는 할 얘기가 많아도 조금밖에 못 했다. 아빠는 뒷사람들이 기다린다고 빨리 끊어야 한다고 했다. 편지에는 아빠가 술 끊는 사람들의 모임에 다녀오면 받는 열망팔찌를 넣어서 보내줬다. 나는 감귤농장에서 내가 직접 딴 귤을 보내줬다. 아빠가 편지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할 때도 있었다.

 

요즘에는 아빠가 핸드폰도 가지고 다녀서 영상통화도 할 수 있고 아무 때나 전화도 걸 수 있다. 아빠는 이제 병원에서 밥차로 식사를 나르는 일을 한다. 아빠는 술을 전혀 안마시고 백일도 훨씬 넘게 지냈다고 자랑을 한다. 명상과 국선도도 매일 열심히 하고 있다. 야구 글러브나 수첩, 손수건, 권투하는 원숭이 인형, 그리고 운동화 같이 내게 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을 자주 선물로 보내준다.

 

아빠는 내가 문병을 왔으면 하고 바라지만, 우리 집은 제주에 있고, 엄마 건강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한 번도 못 가보았다. 아빠가 밥차를 밀면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고, 아빠가 탁구를 하는 곳에서 나도 탁구공을 던지고, 받고 싶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난번 아빠가 석 달 만에 집에 왔을 때 아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은 못 느꼈다. 술을 한 번도 마시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밤에 잠을 자지 못했고 자신감 없이 지쳐 보였다. 그래서 내가 자장가를 불러 재워주었다. 가족과 자주 만나지도 못하면서 아빠 혼자 지내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것 같았고 엄마와도 서먹서먹해 보였다. 작은 일에도 마음이 상하고 삐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술을 마시지 않고 열심히 생활하면 아빠의 우울한 모습이 언젠가는 없어질까? 언젠가 치료가 다 끝나면 아빠가 한숨 쉬지 않고, 핸드폰만 쳐다보며 시간 보내지 않고, 내가 얘기할 때 내 눈을 바라보고 집중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때쯤이면 우리 가족이 다 함께 제주에서 살면서 같이 맛있는 밥을 먹고, 매주 교회에도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