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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랑중앙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의 가족분들이 보내주신 생생한 경험담입니다.
알코올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치료의 조력자가 되어 가정의 평화를 되찾으신
알코올중독자 가족들의 회복수기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알코올 중독 가족들에게 큰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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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알코올 중독 가족수기] 엄마가 행복하면 아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
등록일 2021-02-09 조회수 614 이름 다사랑
첨부파일 2019-가족수기_썸네일.jpg

[2019 가족수기 공모전 장려상]

 

엄마가 행복하면 아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

 

○○

 

안녕하세요? 저는 다사랑중앙병원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 ***엄마입니다. 저희 아들은 이제 막 단주를 시작한, 걸음마 단계인데 이런 경험담을 쓸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지만 저의 경험담으로 인해 자식이 알코올의존증 환자인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아픈 상처를 끄집어낼 용기를 내었습니다.

 

저희 아들은 현재 단주생활 3년차 초년병입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어디서부터 저의 마음을 적어나가야 할지 가슴이 먹먹함이 밀려오네요. 저희 집은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 아버지와 그저 아들의 말이라면 잔소리는 조금 하지만 다 들어주는 충실한 조력자 역할을 한 엄마인 저, 그리고 두 살 아래의 강직하면서도 마음이 여린 남동생을 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화목하고 평범한 가정이었습니다. 저희 시댁 가족들은 술을 아주 좋아해서 가족들이 모이는 날은 술병이 박스채 쌓이곤 합니다. 조상 대대로 술을 아주 좋아하는 집안입니다. 남편도 완전 애주가였습니다. 남편은 술은 어른한테 배워야 한다고 아들이 중학교 3학년 때 맥주를 한 잔 먹게 했습니다. 그 후에도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간혹 한두 잔씩 먹이곤 하였죠.

 

아들이 본격적으로 술을 먹게 된 시기는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때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서 혼자 캔맥주를 사다 먹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우연히 아들 방 청소를 하는데 빈 캔맥주 깡통이 나오는 순간 당황했지만 크게 걱정은 안했습니다. 아들이 재수, 삼수를 할 때에도 술은 먹었지만 크게 문제는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군대 입대 하는 날도 술 먹고 늦게 들어와 군 입대도 술이 덜 깬 상태에서 간신히 들어갔습니다. 남들은 아들이 군대 간다면 마음 아파하고 슬퍼하지만 우리 가족은 아들의 옷이 도착하는 날 남아있는 가족이 서로 얼싸안고 박수를 쳤습니다. 이제는 되었다고, 군대 가서 사람 만들어 나온다고 좋아했고 잠시나마 아들한테 해방된 기분으로 저는 더없이 좋았습니다. 아들은 군 생활을 강원도 화천 GOP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천오백 계단을 오르내리며 요즘 말로 진짜 빡세게 했습니다. 아들은 둥글둥글한 성격으로 조직사회에 잘 적응하여 군 생활은 잘 하였습니다. 오죽하면 소대장님과 대원들이 말뚝 박으라고 할 정도로 충실히 잘하고 제대를 했습니다.

 

아들은 군 제대 후 다니던 대학이 싫다고 1년 재수를 하여 서울에 4년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발표하는 날 저희 가족은 참 행복했습니다. 학기가 시작되어 아들 나이 26살에 20, 21살 동생들과 공부하다 보니 처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고 수업은 잘 따라가지도 못했나 봅니다. 학교생활에 회의를 느끼던 차에 동생들하고 모임에서 사소한 싸움이 일어났고 소심한 아들은 자기가 왕따를 당했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때부터 학교 가는 날보다 안 가는 날이 더 많아지게 되었고 매일 매일 술독에 빠져 살았습니다.

 

아들은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게임에, 음악 듣고, 몰래 술을 사다 먹는 그런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편하고의 트러블이 잦아지게 되었고 이러다가는 부자지간이 웬수가 될 것 같아 원룸을 얻어 아들을 분리시켰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아들의 조력자 역할을 더욱더 완벽하게 했습니다. 술 먹고 쓰러져 잠자는 사이에 가서 방을 청소하고 냉장고에 먹을 것을 챙겨두고 밑반찬을 해놓고 용돈을 주고, 그렇게 집안이 시끄러운 게 싫어서, 그리고 아들이 마음잡고 학교에 나가길 바라는 마음에 하나도 아쉬운 것 없이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일주일에 3일은 학교에 가고, 3일은 술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는 생활을 하면서 결국 학교를 휴학하고 말았습니다. 그 와중에 요리를 배운다고 학원에 다닌다는 미끼로 저에게 용돈을 달라고 하는 등 갖가지 거짓말로 순간순간을 모면하려고 하곤 했습니다. 아들은 평상시에는 집에 오지 않다가 술에 취하면 집에 와서 남편과 싸우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아빠에게 욕을 하고 기물도 파손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빠가 한 대라도 때리면 가정폭력이라고 지구대에 신고도 여러 번 했습니다. 저는 그런 남편과 아들 사이에서 너무나 힘들었지만 나이를 먹으면 좀 나아지겠지, 술 먹고 하는 주사려니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밖에도 수많은 사건, 사고가 많았고 몇 년 동안 술만 먹으면 가게로, 집으로 와서 돈을 안주면 협박하고 힘들게 해도 시간이 가면 나아지겠거니 하고 아들이 술을 덜 먹게 하기 위해서 안 해본 짓이 없이 다 해보았습니다. 하도 아들이 술 먹고 가게 와서 저를 힘들게 하니 거래처 분께서 알코올병원에서 입원시키라는 말을 했는데, 이런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힘들어하면서도 조력자 역할을 참으로 잘했습니다. 그런 시간 속에 작은 아들도 형이 술 먹고 집에 오는 것을 싫어하고, 전화도 받지 않고, 작은 아들도 형을 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말에도 어떻게 젊디젊은 놈을 입원시켜야 하냐면서 참고, 또 참으면서 하루하루 생활하던 중 아들을 병원에 입원시키게 된 결정적 계기는 아들이 저에게 폭력을 행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들한테 한 대 맞는 순간, 별이 번쩍하며 치욕감과 모멸감을 참을 수가 없어 그 이튿날 바로 병원을 알아봤습니다. 술에 취한 아들을 사설 119를 불러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 입원시키고 돌아오는데 참으로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아들 원룸에 가서 방 청소를 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뭐가 부족해서 아들이 저렇게 되었는지 신도 원망하고 조상도 원망하며 엉엉 울었습니다. 병원에 입원시킨 원장님을 통해 아들이 주사가 아니라 알코올의존증 환자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아들의 주사가 나이가 들면 나아지겠지하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아들은 엄마가 아들을 병원에 입원시킨다고 저에 대한 분노가 많았기에 면회는 주로 남편이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났을 무렵 학교 문제도 있고 하여 다시는 술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을 받고 퇴원을 시켰습니다. 퇴원하는 날, 아들은 집으로 가자고 하니 싫다고 하면서 원룸으로 들어가는 길에 아빠 몰래 캔맥주 3개를 사달라고 하면서 다시는 술 먹고 문제 일으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저는 아들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한동안 아들은 학교도 복학해서 잘 다니고 술은 먹지만 큰 말썽 없이 잘 지냈습니다. 그러다가도 술만 먹으면 아들은 자기를 왜 병원에 입원시켰냐고 따지면서 저를 힘들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이 입원한 병원 시스템이 알코올중독자만 따로 입원한 게 아니라 장애인, 정신질환자랑 같이 생활하기 때문에 밤에 소리를 지르고 해서 잠도 못 자고 복용하게 하는 약도 수면제 위주로 주다 보니 병원을 퇴원하고 한동안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아들이 아무리 힘들게 해도 다시는 병원에 보내지 않는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희 가정에 불행이 닥쳤습니다. 평소에 술을 즐겨 하던 남편은 옆구리가 결려서 진찰을 해보니 식도암 1기였습니다. 남편은 늦깍이 공부를 시작한 만학도였습니다. 남편이 병원에서 수술하고 40일 동안 생사를 넘나들 때에도 작은 아들과 둘이서만 아픔을 같이 했지, 아들한테는 병원에 와서 술 먹고 소란 피운다고 알리지 않고 아들 뒤치다꺼리에, 남편 병 간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45일 만에 퇴원해서 집에 온 남편에게 아들이 술 먹고 집에 와서 하는 말이 병들었으면 죽지 왜 안 죽었느냐고 하면서 저희 가족을 너무나 힘들게 하고, 또 평소에 엄마 힘들까봐 불평 한마디 없던 동생을 너무 힘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병원에 입원시키지 않는다고 약속한지 1년 만에 남편은 반대했지만 병원에 다시 입원시키기로 마음먹고 알코올전문병원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보건복지부에서 인정한 다사랑중앙병원을 소개받고 만취가 된 아들을 입원시키게 되었습니다.

 

입원하는 날 병실로 가는 길에 아들은 저에게 폭언을 하면서 들어가더라구요. 아들을 입원시키고 돌아오는 택시에서 부끄러운 것도 없이 참 많이 울고, 집에 와서도 남편하고 부둥켜안고 많이 울었습니다. 남편이 울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든 아들을 사람 만들어 놓겠다고..

 

다사랑중앙병원은 시스템이 참 잘 되어있었습니다. 상담사님들이 환자의 아픈 마음까지도 다 보듬어주시고 담당 원장님께서 케어해 주시고, 아들이 병원에 입원해서 얼마 동안은 힘들게 했지만 상담사님과 원장님, 환우들 덕분에 서서히 적응을 해 나갔습니다. 관리병동에서 개방병동으로 내려와서 생활하면서 집에 오면 남편은 아들이 먹는 것에 특히 신경을 써주고 병원에 갈 때면 남편도 수술한 지 얼마 안 된 환자였지만 아들을 혼자 가게 하지 않고 꼭 병원에 데려다주었습니다. 병원을 가는 1시간 동안 아들은 아빠하고 27년 동안 못다한 대화를 참으로 많이 했다고, 지금도 가끔 이야기하곤 합니다.

 

다사랑중앙병원의 가족교육을 받으면서 이무형 원장님의 알코올의존증에 대해서 강의하시는 내용을 듣고 그동안 아들이 우리 부부에게 한 행동이 아들의 의지대로 한 행동이 아니고 무의식 상태에서 한 행동이라고 교육받고 나니 아들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유전적 요인이 80%나 된다는 강의를 듣고 아들이 한없이 안쓰럽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도 권위주의 아빠에서 아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저보다 더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아들은 재활병동에서의 생활도 열심히 하고 8개월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원룸을 정리하고 집에서 살기로 결정을 하고 하루하루 생활하는데 아들이 생각보다 적응을 잘 한 것 같았습니다. 우리 부부는 가족의 울타리가 얼마나 따뜻하고 소중한지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였습니다.

 

퇴원한 지 일주일이 지나 아들이 면허취득을 하러 면허시험장에 갔습니다. 면허취득을 위해 비고란을 읽던 중 알코올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상담 후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하다는 문구를 읽고 아들이 생각하기에 나는 그동안 열심히 병원 생활도 잘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사회에서는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불안증세가 일어나 면허시험도 보지 않고 버스를 타고 집에 오던 중 평소에 다니던 미아삼거리 술집에서 소주 두 병을 시켜 먹고 있으면서 저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로 엄마 나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술 먹고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은 터질 것 같았고 온몸에 맥이 쫙 빠졌습니다. 전화로 설득해도 소용없고 애원해도 소용없었습니다. 남편이 술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술을 두 병 이상 먹은 상태였고 아들의 감정을 추스릴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참 허무했습니다. 아들이 8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해있을 동안 우리 가족들은 아들을 위해서 각자의 생활도 다 져버린 채 가족교육을 열심히 듣고 알아넌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남편은 회복도 덜 된 몸으로 아들이 원하면 뭐든 다 오케이였는데.. 아들의 재발에 배신감과 실망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으며 우리 가족은 서로 내색은 안했지만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캔맥주 한 캔만으로 시작해서 조금씩 술을 먹기 시작하더니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착한 아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입원하기 전 모습으로 돌아가 그 전 생활을 서서히 시작했습니다. 또다시 남편과는 큰 소리가 나고 집안을 공포 분위기로 만들기 일쑤였고 작은 아들이 너무 힘들어하기에 다시 병원에 입원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사랑에 두 번째 입원시켰을 때는 학교 문제로 병원에서 반대했지만 아들한테 각서까지 쓰고 한 달 만에 퇴원을 시켰습니다. 퇴원 후 각서까지 쓴 약속은 온데간데없고 학교생활은 하는 둥 마는 둥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이 만학도의 꿈을 안고 대학교에 입학하여 2학기를 시작할 무렵 식도암이 재발하였고 손 쓸 틈도 없이 20172월에 급성폐렴으로 저희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장례 기간 동안 아들은 그래도 술을 먹지 않고 장남의 역할을 하고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와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술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항상 엄마 나 캔맥주 딱 한 캔만 먹을게로 시작해서 만취 상태가 되었고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으로 너무나 힘든 저와 작은 아들을 두 배, 세 배 무던히도 힘들게 했습니다.

 

아들은 술 때문에 남편의 삼우제에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아빠의 죽음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전 생활을 반복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택시기사님과 시비가 붙어 경찰서까지 가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박미희 상담사님께 전화를 걸어 입원시켜달라고, 아들을 치료해 줄 병원은 다사랑중앙병원밖에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 생각으로 아들은 이무형 원장님을 존경하고 원장님 말씀을 가장 잘 들었습니다. 자기 주장이 강하여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놈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세 번째 다사랑중앙병원에 입원해 관리병동에 있을 때는 아들을 면회하지 않았습니다. 아빠의 죽음으로도 정신을 못 차린 아들이 너무나 미웠고 작은 아들과 저도 이미 알코올 가족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아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도 낯선 번호만 떠도, 경찰차만 봐도, 택시만 봐도, 간이 오그라들고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개방병동에 내려가기 전, 발표하는 날 작은 아들과 처음으로 얼굴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입원했을 때 발표 내용보다 더 진실로 느껴졌고 아들 자신이 알코올에 무력했으며 알코올의존증 환자임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동안 가족을 힘들게 한 것도 진심으로 사과할 줄 알고 변해 있는 아들의 모습에 반갑기보다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아들은 개방까지 마치고 퇴원을 해서 단주생활을 시작하면서 외래치료를 받으며 A.A.모임에 열심히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A.A.모임만이 아들이 살 길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생활하던 중 작은 아들이 술을 먹고 들어오는 날은 술 냄새에 아주 민감했고 예민하게 받아들여 두 아들 모두 다 힘들어하고 서로가 불편해했습니다. 결국 형이 술 문제로 힘들게 할 때나 남편의 죽음으로 의지할 곳 없는 저에게 큰 힘이 되고 의지가 되던 작은 아들을 원룸을 얻어 분리를 시켰습니다.

 

저는 외롭고 허전해서 힘들었지만 두 아들은 한결 마음이 편해 보였습니다. 아들은 주위 환경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단주생활을 하며 학교에 복학하여 32살 나이에 2018, 1년 동안 학교생활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1년 동안 단주생활을 잘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까지 마친 아들을 꼭 안아주며 많이 칭찬해 주었습니다. 아들은 현재도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거의 일주일 내내 A.A.모임에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아들이 다사랑중앙병원에 처음 입원할 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교육에 꼭 참석하여 그동안 알코올의존증에 대해 몰랐던 강의를 듣고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전문 지식도 없고 너무나 무지했던 저에게 아들이 퇴원한 후 케어하는 방법까지도 잘 가르쳐 주셨고 그로 인해 아들을 좀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하는 행동에 대해서 대처하는 힘을 다사랑 알아넌 모임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서 알아넌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오늘도 행복 쌓기를 해 나가고 있습니다. 알아넌에 갈 때에는 고민을 안고 가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볍고 그래 나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라고 다짐하곤 합니다.

 

오늘도 신께 감사하며 아들에게도 한없이 감사합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먹지 않고 저에게 그동안 아들을 못 믿던 불안증세를 떨쳐 버리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동안 저희 가족은 아들의 술 문제 때문에 정신과 상담도 받았고 전문상담사님과 개인 상담도 받았지만 별 도움을 못 받았습니다. 체계적으로 환자를 관리하고 상담하고 가족처럼 보듬어주고 퇴원 후에도 관리를 해주며 아들의 불안한 심리를 원장님이나 상담사님과의 상담을 통해서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새 삶을 살게 해 준 곳은 다사랑중앙병원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아들 자신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겠지만요.

 

이 글을 적으면서 지난 아픈 기억들이 떠올라 조금 쓰다 말고 쓰다 말고 포기할까도 여러 번 생각했지만 지난 시간을 묻어둘 수만은 없기에 여기까지 써 내려왔습니다. 우리 가정의 사생활이 다 까발려진 것 같아서 고민했지만 저의 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아들이 평생 술을 먹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불안감은 있지만 사랑하는 우리 아들을 믿고 오늘도 저는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시작합니다. ‘엄마가 행복하면 아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신 알아넌 후원자 선생님의 말씀을 거울로 삼으며, “당신은 참 소중한 사람입니다. 힘내요.” 이 메시지를 나 자신에게 전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그동안 저희 아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주시고 한 인간으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원장님들과 최혜영, 오지연, 박미희, 한성희 상담사님, 간호사님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받침도 틀리고 띄어쓰기도 틀린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 그동안 아들이 일으킨 사건, 사고가 무수히 많지만 일일이 글로 옮기기 너무 많아 정리해서 썼습니다. 그동안의 아들의 알코올 문제는 모든 게 엄마인 저의 잘못이 100%라는 것을 알아넌 모임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알코올에 너무 무지했다는 것을 깊이 반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