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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회복수기

다사랑중앙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의 가족분들이 보내주신 생생한 경험담입니다.
알코올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치료의 조력자가 되어 가정의 평화를 되찾으신
알코올중독자 가족들의 회복수기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알코올 중독 가족들에게 큰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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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알코올 중독 가족수기] 함께 가는 회복의 길
등록일 2021-02-09 조회수 4796 이름 다사랑
첨부파일 2019-가족수기_썸네일.jpg

[2019 가족수기 공모전 대상]

 

함께 가는 회복의 길

 

○○

 

비 오는 수요일 저녁, 요 며칠 날이 풀리고 봄이 오는 듯 하더니 오늘은 제법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우산을 챙겨가라는 아내의 말을 듣지 않았더니 낭패로구나 라는 생각에 잠길 때쯤 휴대폰의 알람이 울립니다. 아내가 싱싱한 딸기 사진과 함께 아침에 이야기한 대로 아들 줄 간식 준비했어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아침에 나눈 부부 대화에서 한창 먹을 나이인 6살 아들에게 식사와 간식을 지금보다 넉넉하게 챙겨주면 좋겠다는 나의 요청을 아내가 멋지게 들어준 것입니다. 이 얼마나 힘들게 얻은 일상의 소소함인지요.

 

3년전 이맘때도 비가 내렸습니다. 병원 앞에서 울며 불며 엄마 품을 찾는 아들을 품에 안은 채 겨우 우산을 들고 우는 아이를 힘겹게 달래며 집에 가는 택시를 잡았던 그때가 어제처럼 기억납니다. 울면서 엄마를 찾던 아이의 손사래에 쓰고 있던 안경이 길바닥에 떨어졌습니다. 한 손엔 아이를 보듬고 다른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우산을 내리고 다시 안경을 집어썼습니다. 안경을 쓰고 나니 뿌옇게 눈앞을 가리고 흐르는 것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술을 좋아했습니다. 아니 술을 사랑했습니다. 대학에서 선후배로 만난 첫 자리도 술자리였습니다. 선후배들을 하나하나 살갑게 챙겨주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술을 좋아하는 수준을 떠나서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을 마신다는 것은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 알게 됐습니다. 긴 연애 기간을 거쳐 결혼 한 후에도 아내는 매일 같이 술을 마셨습니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국가 공무원 시험에서 최종 면접까지 올라갔다가 떨어진 다음부터 술을 찾는 횟수가 더 늘어났습니다.

 

아이를 가졌을 때 잠깐 절제하는 듯하더니 아이를 낳은 이후부터는 그 정도가 더 심해졌습니다. 아예 휴대폰도 꺼놓고 술을 마시기 일쑤였고 연락이 되지 않아 애가 탄 나머지 근무 시간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간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아내는 술에 취해 자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주는 절망감과 함께 아이가 너무 걱정되었습니다. 알코올에 중독되면서 가족들이 점점 더 힘들어하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을 내려야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했던 첫 날 새벽, 진정제를 맞고 자고 있는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고 나왔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지금까지 내버려둔 내가 너무 미안했고, 지금 여기 잠들어있는 아내가 죽도록 미웠습니다.

 

아내는 다사랑중앙병원에 입원해 관리병동에서 치료받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2개월 동안은 아무런 연락도 하지 못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 그리고 상담사 선생님과 가족 면담을 진행하고 그분들의 말씀을 최대한 따르려고 노력했습니다. 당분간은 환자에게도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가족들 역시 환자와 떨어져 지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대신 매주 토요일 병원에서 준비한 가족 교육 프로그램에 꼬박꼬박 참여했습니다. 집에서 병원까지 왕복 5시간을 도로 위에서 보내야 했지만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가족 교육을 들었습니다. 나쁜 습관인 줄만 알고 있었던 알코올 중독이란 병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가족으로서 이 병에 대처하는 법, 환자가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미디어를 통해 이 병이 얼마나 왜곡되어 전달되고 있는지, 그로 인해 환자와 가족들이 받지 않아도 될 고통을 얼마나 많이 받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먼저 회복 과정에 있는 환자들과 환자 가족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내게도 저런 날들이 올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알코올 중독은 습관이 아닌 병입니다. 암이나 감기와 마찬가지로 환자의 의지만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동시에 병이기 때문에 적절하고 효과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또한 대부분 환자의 가족 혹은 사회 생활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생기는 병이기도 합니다. 반드시 환자 스스로 이런 사실을 깨닫고 치료와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가족들 역시 공동 의존과 그로 인한 부작용에서 치유되고 회복되어야 합니다.

 

특효약이 있어서 한 순간에 완치되는 병이 절대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환자와 가족들이 하루하루 중독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병입니다. 가족 교육을 통해 이런 내용을 알고 나서 중독과 환자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었으며 이를 계기로 병원에서 운영하는 단계별 회복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아내의 1단계 발표에 참가하기 위해 병동에 처음 들어갔던 날이 기억납니다.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이라는 병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 신기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가 알코올 중독자임을 인정하며 치료와 회복에 매진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아내의 모습에 어렴풋이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관리 병동에서 내려와 개방 병동으로 옮기고 외부 단주 모임에도 참가하면서 스스로 치료와 회복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집으로 첫 외박을 나온 날, 아이를 돌보기 위해 올라오신 어머님과 크게 다투게 되었고 아내의 상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습니다. 다행히 재발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심한 심리적인 불안함과 분노를 표출했고 담당 선생님은 감정적 숙취에 빠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내는 병원에서 상태 점검을 받았고 그 이후 집으로 외박을 나올 수 없었습니다. 저 역시 희망이 생겼다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두려움과 절망, 아내에 대한 원망과 분노에 가득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힘든 시기였습니다. 이후로도 아내는 틈날 때마다 자신을 입원시킨 것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저도 당시에는 이런 상황을 체념한다기보다 어떻게 이 상황을 마무리하면 좋을까를 더 많이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이혼하면 나아질까? 아이는 어떡하지? 그럼 아내는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끝도 없이 이어져 나 스스로가 사라져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무렵, 상담사 선생님과 진행하는 부부 상담은 유일하게 제가 숨통이 트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만큼은 솔직한 제 감정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아내에 대한 울분을 토하기도 하고, 힘든 상황에서 억누르고 있었던 감정들이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상담사 선생님은 그런 저를 이해해 주시고 받아 주었습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분이 선생님 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독 환자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가족 관계의 회복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 가족들 스스로의 회복과 이를 기반으로 한 부부 사이의 관계 회복이 선행되어야 했습니다.

 

첫 부부 상담 시간, 우리 부부간의 대화를 잠깐 듣고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두 분은 대화를 하라고 했더니 자기 할 말만 하고 계시네요. 남편분 방금 전에 아내가 어떤 이야기 했는지 기억나시나요?” 정말 우습게도 그 당시 전 방금 아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말을 해도 아마 저를 공격하려는 의도라 생각하고 저도 똑같이 상대방을 향해 쏘아붙이는 말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화다운 대화도 없이 아내와 그 오랜 세월을 보내왔던 것이라는 생각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가장 먼저 대화하는 법을 연습해야 했습니다. 나이 마흔이 넘어 대화하는 법을 연습한다고 생각하니 한편 우습기도 했지만, 실제로 아내와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대화란 다름 아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이야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나의 내면에 귀 기울여 진심을 말하는 것. 이 간단한 규칙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습니다. 내 맘대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해석하고 상대방을 내 맘대로 움직이기 위해 상대를 상처 입히는 공격적인 말만 쏟아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꾸준하게 상담을 지속하면서 대화하는 연습을 계속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말 그대로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를 그냥 그대로 듣고 따라 하는 연습부터 했습니다. 상대방의 말이 끝나도록 기다리고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이조차도 불가능했습니다.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연습이었습니다. 저도 아내도 모두 그런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는 연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부 상담을 이어가면서 아내는 개방 병동에서의 치료와 회복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했습니다. 교육과 내부 모임같은 원내 생활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원외의 봉사 활동에도 시간이 될 때마다 참가했습니다. 그렇다고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회복의 길을 잘 가는 듯 하다가도 다시 분노와 원망에 휩싸이고, 스스로 회복에 대한 의지와 주변의 기대를 져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럴 땐 병원과 선생님들을, 그리고 아내를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느낄 때마다 상담사 선생님과 주치의 선생님께 내가 느끼는 아내의 상황을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조언을 얻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아내와의 면담과 점검을 통해 문제점을 점검하고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주셨습니다. 힘들었겠지만 아내 역시 그런 조치를 잘 따라주었습니다. 그렇게 어느새 입원한 지 1년의 시간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1년이 지날 때쯤 개방 병동에서의 회복 프로그램을 이어 재활 병동에서 원내 생활을 이어갈지, 아니면 이 상태로 퇴원을 할지에 대해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병원의 도움 없이는 회복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던 시점인지라 상담사 선생님이 적극 권장해 주신 원내 재활 프로그램을 이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저에게도 아내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결국 스스로 원내 재활을 이어가는 것이 본인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아내 역시 자발적으로 원내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해 주었습니다.

 

부부 상담도 여전히 꾸준히 이어 나갔습니다. 긴 연애 기간과 10년 가까운 결혼 기간에도 잘 몰랐던 아내의 어린 시절과 서로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듣게 되면서 이제서야 한 사람으로서의 아내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나 또한 지금의 나를 만들게 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성장 과정을 다시 돌아보게 될 수 있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 자신과 상대방을 돌아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을 상대방에게 이야기하는 것. 어린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배워야 하는 가장 간단한 것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배워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배우고 깨달아가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내는 긴 원내 재활 과정을 마치고 111개월 만에 다사랑중앙병원에서 퇴원했습니다. 그리고 퇴원한 지 500여 일이 지났습니다. 지금까지 1주일에 최소 한 번은 반드시 시간을 내어서 부부 대화를 진행했고 아내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회복을 위한 단주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이제서야 우리 가족이 건강한 가정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간을 맞이하기 위해 서로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지요.

 

알코올 중독이라는 이 힘들고 어려운 병을 치료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상대방과 자신을 돌아보고 말하고 듣는, 소통의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도록 도와준 병원과 선생님들, 환우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 어린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회복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또한 한 사람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다정한 어머니로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는 아내에게도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모든 중독자와 중독자의 가정이 오늘 하루 더 회복의 길로 나아가길 진심으로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