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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회복수기

다사랑중앙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의 가족분들이 보내주신 생생한 경험담입니다.
알코올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치료의 조력자가 되어 가정의 평화를 되찾으신
알코올중독자 가족들의 회복수기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알코올 중독 가족들에게 큰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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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알코올 중독 가족수기] 새로운 시작과 행복한 동행
등록일 2021-02-09 조회수 341 이름 다사랑
첨부파일 2019-가족수기_썸네일.jpg

[2019 가족수기 공모전 참가상]

 

새로운 시작과 행복한 동행

 

○○

 

????메시지 끝났어요? 오늘은 무슨 말을 했는데?“

그냥 잘했어! 다음에는 정기적으로 화요일이면 메시지 나가게 될 거야????

그 얼굴에는 뿌듯함과 행복감이 묻어 있었다.

????나 선물도 받았어. 무슨 선물?????

왠지 그 선물에는 계산할 수 없는 지나온 과거의 회한과 미래의 희망을 말하는 기쁨이 서려 있었다. 그렇게 알콜중독은 극복되어 가고 있었고, 이 속에서 우리 가족의 인생의 행복한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언제 그랬던가!”

와 누구가 어려움에 처해있대?”

우리가 도울 수 있을까?”

가족은 알라논으로 안내하지.????

마치 알콜중독 극복의 전도사인 양 자연스럽게 말을 주고받는다. 현재 우리 가정은 술 중독으로부터 그렇게 벗어나 회복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7년 전의 일이었다.

, 이제 일생 중 가장 예쁜 신부가 입장하겠습니다. 신부 입장!”

아리따운 신부의 손을 잡은 아버지의 얼굴은 창백하고 신부의 손을 잡은 손은 유난히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아유 신부 아버지가 너무도 손을 떠네, 아마도 너무 긴장했나

시집보내는 것이 서운해서 그렇겠지.????

하객들은 모두들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그 날 아침도 술을 먹고 또 먹었단다. 희미하게도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잠결에 들은 소리...

여보세요! 누구세요!”

, . 여기 한 사람이 공원 앞 길바닥에 누워있는데 전화벨이 울려서요

 

남편은 술이 취해 새벽까지 귀가하지 못하고 길바닥에서 온 밤을 보내고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 ! 그래도 살아 있었구나!’ 아침 새벽 딩동 벨이 울렸다. 이른 아침 미처 출근하기도 전에 경비 아저씨가 날이 밝기 전 교대하여 자리에 앉아 보니 원가 희끗희끗 반짝이던 물체가 보여 가까이 가보니 사람이 이중주차 공간에 누워있더라는 것이다. 아하, 만약 앞차가 조금만 후진을 했던들 즉사할 뻔한 순간이라 경비 아저씨가 모시고 왔단다.

 

, 신이시여!! 저는 전생에 어떻게 살아왔으며,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으로 인해서 이렇게도 어렵게 살아야 하는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직장에 나갔다. 불안한 마음으로.

오늘 또 출근 안했어요.’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혹 죽었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직장의 업무를 뒤로 미루고 빠져 나왔다. 집에 가서 죽었나 확인하려고. 운전대를 잡고 전화를 걸면서 고속도로 중간 쯤에서 전화를 받았다. 부스스한 목소리로....

나 괜찮아,”

 

퇴근 후 집에 와보니 남편이 없었다. 전화를 10번쯤 걸었으나 예상대로 받지 않았다. 집 주위를 미친 듯이 뒤졌다. 우리 차인 것 같은 비슷한 차량이 서 있었다.

! !’

자동차 문을 열어 보니 맥주병이 가득 차 있었고 연기가 자욱했다, 사람은 인사불성이었다. 대화는 물론 의사소통도 불가능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문제일까? 왜 그럴까? 저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다음날도 그리고 다음날도...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남편 회사의 직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 예, 어젯밤에 약주가 괴해서.”

아 예. 어제 손님 접대가 있어서.”

!!”

 

남편이 해야 할 일과 근황에 대해서 알리고 처리하고... 그 때만 해도 남편을 휠체어에 태우고 모든 것을 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 리 없었다. 중독은 이미 남편의 생활을 조정하고 있었고 우리 가정은 중독으로 인해 인간관계가 파멸되어가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홀로서기를 내심 준비하고 있었다. 도저히 기본 생활이 되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었다. 마음은 황폐해 가고 있었고, 우리 가족의 일상은 남편의 술로 인한 사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술 중독은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고 완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리 없었다. 큰 딸아이가 줄곧 술 중독은 치료받아야 하는 질병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지만 내심 남편이라는 인간 자체에 실망과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 딸아이가 중독이 질병이기에 분노를 느끼지 말고 병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로 줄곧 분노를 조절하고 있었다.

 

사실 남편은 어릴 적 무척이나 가난했었단다. 그로 인해 마음에 많은 상처가 있을 것이다. 그 상처는 무언가의 집착으로 나타나고 그 집착은 중독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더구나 술 문화가 만연한 사회에서 내성적이었던 남편은 고학력자이면서 성공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어서 중독의 속도는 가중되었고 결국 사회생활에서 버티기에 너무나도 연약했던 체질은 중독으로 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어떻게 하면 술로 인한 고통을 피할 수 있을까?’

정말로 술로 인한 고통을 피하고 싶었다. 남에게 말할 수도 없었다.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힘으로는 피할 수 없는 고통만이 우리의 전부였다.

해결의 답은 무엇일까? 입원치료, 그러나 입원?’

택도 없는 소리... 아빠가 입원해?’

일전에 권위 있는 의사에게 남편의 진료를 부탁했었으나 저요? 일주일에 맥주 2-3캔 먹어요. 술 잘 안마셔요.”라는 남편의 말에 명의라고 하는 의사들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럼 어쩐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아이가 새 사위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나온단다. 알코올 특화병원에 아빠의 입원을 위한 설득을 위해서 말이다. 중독에 시달린 나머지 중책을 맡은 나의 직장의 일은 이미 남의 일이었다. 나는 결심했다. 나는 35년간 한 번도 결근해 본 적이 없다. 어릴 적 아이가 아플 때는 아이를 데리고 직장에 출근했다. 그러나 너무도 고통스럽고 급했다. 직장 출근도 미루고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병원은 두 군데 선정되었다. 두 군데 병원에 다 전화를 하였다. 두 병원 다 입원 치료와 입원 시 본인을 설득하라고 하였다. 술 중독 특화된 병원, 보건복지부 인증기관, 다사랑중앙병원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의 답이었다. 행운의 여신은 역시 내 편이었다. 나는 큰 딸아이가 가르쳐 준 대로 의왕시에 자리 잡고 있는 다사랑중앙병원을 찾기로 하였다. 그리고 설득을 했다.

 

우리 술 전문병원이 있다는데 한 번 가서 진찰만 받아 보자.”

, 알았어. 나 내일부터 술 안 마실게. 믿어봐.????

계속되는 줄다리기 속에 입원은 속수무책이었다. 우리 큰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아빠를 위해 중독에 관해 많은 정보를 익히고 병원의 입원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금요일 아침 출근을 미루고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좀처럼 결근하지 않는 나를 보며 남편은 이상하다 생각했고 그래, 진료만 받아보자는 심정으로 다사랑중앙병원에 가기로 결정했다.

 

다사랑중앙병원 진료 의사에게 미리 들어가 우리 남편은 중독자이다 알려주고 싶었다. 진료실에 들어갔다.

술을 어떻게 마시나요!” 등 술 중독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으나 남편은 모두 부인하고 있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중독인데, 당신 얼굴 보니 중독 맞구만! 혼자 밥을 먹지 않고, 술을 마시고 음주 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알코올중독입니다. 입원하세요.????

 

가슴에 꽂히고 머리를 찌르던 의료진의 단호한 말. 순간 모든 것이 뚫리며 가슴에 맺힌 것이 풀리는 듯했다. 지금도 의료진이 했던 그 말이 귓가에 맴돈다. 입원은 결정되었다. 그러니까 그날이 금요일이었는데 이후 토요일에 남편은 입원할 거란다. 입원이 결정된 금요일도 회사 일을 처리해야 한다면서 술을 만신창이로 먹고 저녁 늦게서야 집에 돌아왔다.

 

맞다, 중독이다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남편에게 시달릴 때마다 나의 분노를 조절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이 순간까지 오게 한 큰 아이의 고마움과 든든함이 나를 감쌌다. 토요일 입원!!! 집에 돌아온 나의 정서는 너무도 피폐되어 있었고 허하고 서먹하고 불안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데. 허둥대며 마음속으로는 중독이다를 수없이 되뇌이고 있었다. 중독이 질병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데는 현장에서의 숱한 고통이 진행된 이후에나 알게 된다는 것을 그때알 리가 없었다.

 

입원 2주일 후 면회를 하게 되었다.

여보 나 정신병자인거 맞아.”

눈을 마주치지 못할 정도의 흐릿한 눈빛으로

나 알콜중독자야. 상담사가 준 책을 읽어보니 맞는 것 같아.”

눈을 마주지지 못했다. 물었다.

어디 아파?”

아니, 병원에서 준 약 먹었어,”

 

! ! 남편도 적잖이 자신을 알게 된 것 같았다. ! 그 고통 중에도 오랜 세월 부인하더니!내가 알콜중독자? !! 마음 속에 알 수 없는 희망과 카타르시스가 일어나고 있었다. 길고 긴 터널을 건너왔구나! 마음 속이 뻥 뚫리는 듯했다. 입원 후 2주일 만에 그렇게도 어렵다던 1단계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던 것이다.

 

사실 그때 나는 정말 너무도 급했기에 입원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 입원 자체를 주변에 다 알렸다. 심지어는 회사에 입원 상태를 알린 후 회사 사람들이 의사의 허락을 얻어 병원 내에서 회사의 업무를 처리하게 하였다 광고할 일은 아니라도 적어도 질병이기에 치료를 숨길 일은 아니라고.

 

다사랑중앙병윈의 치료는 시작되었고 그 치료는 특화되어 있었다. 환자 본인에게 단순히 약만 주고 신체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변화를 위해서 환자는 물론 가족에게도 교육이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가족교육은 그야말로 우리의 가족의 일상을 CCTV로 찍어 본 듯 우리 가정의 이야기였다. 알코올중독은 본인만의 병이 아니라 가족병이란 측면에서 가족교육은 단주하는 데 절대로 필요한 것이었다. 우리 가족이 왜 그런 고통을 당하고 사는지에 대한 원리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중독적 사고의 특성, 공동의존 등. 알콜중독 환자와의 공동의존은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다니는 가족의 모습이라는 것도. 특히 알코올중독자는 술을 먹어야 양쪽의 뇌가 균형을 이루어 정상인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것도.

 

! !’

그때는 정작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직장이 있었음에도 나는 매주 진행되는 가족교육에 참여하여 마치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원리를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원리가 이해되면서부터 단주의 길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고통의 답이 바로 이 가족교육이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더더욱 절실히 깨닫는다. 왜냐하면 알콜중독 치료를 할 사람도 가족이고 결국 그 치료를 막고 있는 것도 가족이기에...

 

관리병동에서의 인지 치료는 단계마다 매우 의미가 있었다. 약물 치료와 함께 환자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글을 작성하게 하고 그 글을 병원 환우들과 환자 가족 앞에서 단주를 약속하는 프로그램은 정말로 유익했다. 상담사 선생님과 문답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순간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서럽게 살아온 나의 고통에 대한 보상인 것처럼.....

 

또 환자 교육 시 남편이 적어 놓은 노트를 보니 앞에 앉은 환우가 여자였던 것 같았다. 노트에 여자 뒷머리를 그리고 그 옆에 사탄이 불을 뿜는 듯한 곳에서 자신이 혀를 낼름거리며 술을 갈망하는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은 정말 명화 중의 명화인 것 같았다. 자신의 심리가 다 드러나는 것 같았다. !! 다사랑중앙병원의 치료가 먹혀 들어가고 있구나! 환자 교육도 보호자 교육 못지않게 내실 있고 꼭 필요한 교육이며 그 교육이 단주를 위한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어서 9주간의 개방병동의 행동치료 과정은 단주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들이었다. 다행히도 남편은 개방병동의 치료를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더 치료를 받겠다고 했다. 역시 행운은 우리 편이었다. 개방병동의 치료가 결정된 후 나는 집안의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술의 이미지와 맞물린 가구들, 특히 침대와 술, 나는 이제껏 살아온 것들 부정하듯 평생 쓰려고 장만했던 가구들을 다 버렸다. 남편이 집에 외출을 왔을 때 새롭게 시작하려고.

 

마음 속에 생기는 두려움은 다사랑중앙병원과 동행함으로써 해소하기로 했다. 이제 두렵지 않다. 인생의 이 무거운 짐을 다사랑과 함께 한다는 믿음과 함께.... 마음 속의 버팀목이 된 다사랑중앙병원의 치료. 특히 의료진의 전문성, 보호사님들의 따뜻한 배려, 희망의 말들, 다사랑중앙병원의 치료 시스템은 분명 나의 아군이며 고통을 풀어줄 정답들이었다.

 

, 당신한테 잘못한 거 너무 많아. 특히 술 먹고 당신 눈 다치게 한 것. 내가 너무 잘못한 것 같아. 그동안 당신한테 잘못한 것들 하나 하나 적어두고 있어. 8개까지 적었어.”

분명 내 귀에는 그렇게 들리고 있었다. 남편의 눈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알 수 없는 깊은 안도와 카타르시스가 일어나고 있었다.

여보, 나 지금 내 인생 전체를 돌아보고 있어. 과거의 상처가 나의 열등 의식이, 나의 상처가 중독으로 나타난 것 같아. 매일 매일 나 자서전 쓰고 있어. 나 여기 있어도 바빠.”

! !’

 

그렇게도 바라고 바라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행운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기적일까! 혼란스러웠다. 같이 공감하고 소통이 된다는 것이, 술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분명 5년 전보다 남편은 변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회복을 할 것이다. 그 변화는 우리 가족의 행복의 전환점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과거의 그로 돌아가 온전한 한 인간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 이것만이 나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자손에게 물려줄 건강한 재산일 것이다.

 

다사랑중앙병원의 특화된 프로그램을 마치고 퇴원을 했다. 두려움과 함께 찾아온 퇴원.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남편은 상담사님의 도움으로 A.A.모임이란 곳을 매일 나가기 시작했다. 나머지 가족은 알아넌 모임에 참석했다. 생소하고 낯설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길을 걷고 있구나!를 깨달았고 알 수 없는 새로운 또 다른 생활이 시작되었다. 모임의 참석 횟수가 늘어날수록 우리 가정은 다른 어려운 가정과 유대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격려하고 지지하는 삶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나는 공개모임의 참석을 통해 남편을 더 이해하게 되었고 모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나만의 단주가 아니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빛이 되고 싶었다. 알아넌에서 봉사도 하였고 개인 간 소통을 통해서 마음을 나누기도 하였다

 

남편은 어느 날 공개모임에 필요한 100인분의 음식 준비를 부탁해왔다. 처음에는 해본 경험이 없어 힘들었다. 평생 직장생활로 요리 솜씨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준비를 했다. 어찌 보면 봉사라는 거창한 단어를 쓰지 않지만 내 생애 매우 의미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후 남편은 술로 고통받는 곳에서 메시지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는다. 모임에 나가는 것도 너무 좋아한다. 지금 우리 가정은 완치는 아니겠지만 휠체어를 타지 않는 건강한 삶으로의 회복 중인 것은 확실하다.

 

중독은 단지 겉으로 드러나 있는 현상일 뿐 그 뿌리에는 깊고 깊은 상처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 상처의 치료는 가족 간의 순기능적 역학관계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제부터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출발한다. 내가 살아오는 인생의 틀을 바꾸고 패러다임을 바꾼다. 행복한 일상을 위해서, 평범한 일상을 위해서, 또 다른 새로운 시작으로 가기 위한 기적을 이룰 것이다.

 

수없는 어려움 속에서 단주를 시작한 남편에게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우리 가족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전환점을 마련해 주신 단주를 위한 특화된 프로그램을 진행해준 다사랑중앙병원의 의료진과 상담사님들에게 거듭 거듭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남편은 지금 현재 다사랑 늘푸른’ A.A.모임의 대표 봉사자와 신림 동행모임 산악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매달 3째주 수요일과 마지막 주 화요일에 다사랑중앙병원에 자신의 회복 경험담을 전달하는 A.A.메시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 모든 활동은 아마도 자신의 평생의 단주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될 것이며 그 길은 우리 가족의 행복의 지름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