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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랑중앙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의 가족분들이 보내주신 생생한 경험담입니다.
알코올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치료의 조력자가 되어 가정의 평화를 되찾으신
알코올중독자 가족들의 회복수기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알코올 중독 가족들에게 큰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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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알코올 중독 가족수기] 무서움과 지친 마음으로 입원했던 병원, 이제는 평온함으로
등록일 2021-02-09 조회수 291 이름 다사랑
첨부파일 2019-가족수기_썸네일.jpg

[2019 가족수기 공모전 참가상]

 

무서움과 지친 마음으로 입원했던 병원, 이제는 평온함으로

 

○○

 

20대 초반, 젊은 나이에 만나서 부부가 됐습니다. 친정 부모님은 술 좋아하는 집안에 시집가면 술 때문에 속 썩는다며 반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친정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컸던 시기에 만난 사람이고 성품도 착한 것 같고 이 사람이랑 결혼하면 좋을 것만 같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이란 게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가 생겼고 남편은 매일매일 총각처럼 술 마시고 외박하고 혼자서 우는 갓난아기를 달래다 지쳐서 아기를 부둥켜안고 같이 울다 잠이 들곤 했습니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됐고 반대한 친정 부모님께는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댁에도 자존심이 상해서 내 남편이 술 먹고 외박한다는 얘기를 하기 싫었습니다. 그렇게 순간순간 힘들고 괴로웠지만 감정을 숨긴 채 하루하루를 살았고 욕구불만은 커져만 갔습니다. 참다 참다 폭발하면 아이들 생각도 안하고 대판 싸움이 일어났고 어린 자녀들은 피해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남편의 술 패턴은 이유 없이 한 달에 한 번은 심사가 뒤틀려서 살림을 부수고 주사를 부렸습니다. 한 달이 큰소리 안 나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조마조마하고 긴장 속에서 살았습니다. 음식 솜씨가 있던 나는 맛있는 것을 만들어주면서 비위를 맞추곤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아이들은 성인이 됐고 우리 부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대화도 없어졌고 형식적으로 각자 일하며 책임감으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부부의 연으로 여지껏 버틴 건 터울이 있는 늦둥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코올중독자와는 대화도 안 되고 본인 말만 하고 상대 이야기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저는 문제를 키우지 않으려고 문제가 심각한데 모른 척하면서 억지로 생활을 했습니다. 남편의 술 패턴은 날이 갈수록 단주의 시간이 짧아지면서 많은 양의 술을 마셨습니다. 주사의 강도도 세졌습니다. 작년 6월에는 술에 취해서 저한테 함부로 하는 것을 큰 애들이 듣고 있다가 왜 그러냐며 시비가 붙었습니다. 덤비는 큰아들에게 식칼을 들고 다들 죽여버린다며 위협하는 남편을 방어하다가 결국 큰 애는 오른손 손가락을 베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신고를 했고 남편은 경찰이 데려가고 다친 큰아들은 엠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갔습니다. 다친 큰 아들은 신입사원이었고 컴퓨터로 설계를 하는 일을 하는데 손을 많이 사용하는 일이라 여름내 고생을 하며 버텼습니다. 그나마 아빠를 이해하려고 했던 둘째도 그 사건으로 마음을 닫게 됐고 셋째한테만큼은 상처를 주지 않고 키우려 했는데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그런 무서운 상황을 만든 남편은 오히려 화를 내면서 큰 애들 꼴도 보기 싫으니 독립시키라고 난리를 쳤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술을 계속 마셨고 억지를 쓰면서 식구들을 불편하게 했고 저한테는 방을 얻었냐며 계속 재촉을 했습니다. 소통이 되지 않아 평소에도 아이들과 관계가 좋지 않던 남편은 술 문제로 방법을 못 찾고 결국 아이들을 쫓아내는 걸로 결론지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불안한 마음으로 긴장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큰 애가 고백하기를 고등학교 시절에 아빠가 술 먹고 엄마를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술을 먹은 날은 잠을 못 잔 적도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데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어미가 되어 아이들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고 내 감정도 추스르지 못해서 한참 공부해야 될 아이들에게 짐이 됐다는 생각에 미안하고 죄스러웠습니다. 남편이 더 원망스럽고 내 마음속에는 복수, 분노, 무시, 악을 쌓아갔습니다.

 

이 사건으로 시댁에서 우리 집 상황을 알게 되었고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고 병원을 가지 않으려고 하는 남편을 시댁 식구들의 설득에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게 됐습니다. 두 달 만에 퇴원을 했는데 단주에 실패했습니다. 기대를 했던 만큼 실망은 컸고 안되는구나하는 마음에 한숨은 깊어졌습니다. ‘그나마 애들 키우면서 가정을 지키려고 여지껏 버텨온 것이 어떤 힘이었을까?’ 나 스스로 혼란스러웠고 모든 불행의 씨앗은 알코올중독자인 남편 때문이라고 단정지으며 강하게 밀어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번 똑같은 일상에 똑같은 상황에 녹음기를 틀어 놓은 듯한 똑같은 멘트들. 지겹도록 싸우면서 지쳐갈 때 건축업(자영업)을 하고 있는 남편은 큰 공사가 나와서 일을 간다며 현장 근처에 방을 얻었고 짐을 챙겨서 도망가듯 떠났습니다. 온몸에 기운이 빠지고 피곤한 일상이었던 나에게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도 항상 고달프고 힘들었는데 알코올중독자와 살아가야 하는 인생은 더 말할 나위 없고 지쳐갔습니다. 남편은 현장 숙소에서 술을 계속 마셨고 낮에도 술을 마시고 현장에 투입되어 작업하는 책임자들과 실랑이가 벌어졌고 현장에서 쫓겨났다고 합니다. 그만 먹으라고 말리는 식당 주인과 시비가 붙어서 식당에서도 쫓겨나고 그렇게 가는 곳마다 문제가 발생했고 더 이상 본인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나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서도 술은 멈추질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게 정말 숨이 막히고 심장이 벌렁거리면서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귀신같이 변하는 남편이 무서웠고 이러다 어느 누구 하나 죽어야 끝이 날 것 같았습니다. 사람이 왜 저렇게까지 될까? 정말 이제는 더 이상 참는 게 의미가 없었고 결말을 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나가라고 소리 소리쳤고 내쫓았습니다. 무섭고 불안한 마음에 본인들 의지와 상관없이 독립한 큰 애들을 불러서 그동안 자초지정을 얘기했더니 우리를 내쫓았으면 잘 살아야지 이게 뭐냐며 속상해했습니다. 엄마도 할 만큼 했으니 이혼하라며 얘기했습니다. 이래서 어떻게 살겠냐며 하루를 살아도 마음 편히 살아야지 막내 교육상도 안 좋으니 엄마가 결정을 내리라고 했습니다.

 

집을 나가고 2~3시간 뒤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남편이었습니다. 술에 취해 악에 받친 무서운 얼굴로 초인종을 계속 눌렀고 겁에 질려 문을 못 열고 있는데 눈빛이 돌아가면서 두리번거리더니 정확한 기억은 없는데 공구통에서 뭔가를 집어 들더니 도어락을 내리쳤습니다.‘! ! !’ 소리에 자고 있던 큰 아들이 일어났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저에게 둘째는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고 신고하는 사이에도 남편은 도어락이 부서질 때까지 내리쳤습니다.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며 경찰을 기다리고 있는데 도어락은 산산조각이 났고 남편은 계단으로 사라진 뒤 경찰이 도착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큰 애들을 불렀지만 보지 말아야 할 상황을 봐버렸고 또다시 상처를 준 것 같아 후회했습니다. 나 스스로 의존하고 있는 부분에 더욱 비참했습니다. 남편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 모텔을 얻어놓고 낮이고 밤이고 눈만 뜨면 술을 마셨고 남편의 방법대로 해결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닫혀진 제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자기 말이 통하지 않자 제가 일하는 곳에 불을 싸지른다며 협박을 했고 일도 하지 못하게 수십 통의 전화, 받지 않자 문자로 폭언은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처음 갔던 병원에서 단주를 실패한 뒤 몇 달 동안 술을 못 마신 게 억울했는지 가족들에게 이제 술 먹고 살겠다며 공표를 하고 단주하기 전에 술의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의 술을 마셨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던 상황에 신의 도움인지 본인이 살려고 했는지 고모님들과 통화를 하면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고 취중에 치료를 받겠다며 병원에 간다고 했다며 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첫 번째 갔던 병원에서 실패한 뒤 병원을 알아보던 중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한 알코올중독 전문병원이라는 말에 믿음이 갔습니다. 치료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일일이 검색을 했습니다. 막내 고모님이 남편을 픽업해서 망설임 없이 다사랑중앙병원으로 향했고 보호자 2명이 필요하단 말에 아직 화해를 안 한 큰 아들과 지하철로 갔습니다.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로 술 취해 망가져 가는 남편을 병원에서 맞닥뜨렸습니다. 그 순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입원시키고 돌아오는 내내 지금의 상황, 앞으로의 일들을 고민하며 착잡한 마음으로 집에 오니 새벽 2시를 가리켰습니다.

 

오늘은 잠 좀 편히 자자.’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아보지만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입원한 지 2일이 지난 후 병원에서 상담사라면서 전화가 왔고 남편은 술이 깬 상태로 창밖을 보며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며 근황을 알려줬습니다. 보호자 교육이 화요일, 토요일에 있으니 참석하여 도움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다사랑중앙병원은 입원을 하면 상담사가 정해지고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을 여는 상담을 하면서 치료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는 듯했습니다. 상담사와 토요일 첫 면담을 하면서 남편 소식을 들었고 병원 생활에 대해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설명을 들었습니다. 보호자 교육 10회 수료를 하면 10만원 보조를 받는다고 안내받았습니다. 첫 회 보호자 교육에 들어갔는데 알코올중독자가 된 원인이 보호자에게 있다는 얘기에 뭐지?’하며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입원 후 일주일이 지나야 면회가 가능하단 얘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병원을 나서는데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봤더니 7층 병실에서 내가 나오는 것을 보고 남편은 오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난리친 후 첫 만남이었습니다. 서로가 거리감이 느껴졌고 주독이 안 빠진 거무스름한 얼굴빛은 더 초라해 보였습니다. 서로가 생각할 시간도 필요했고 그 전에도 그랬듯이 별다른 대화 없이 치료 잘 받으라고 하고 헤어졌습니다.

 

의무감으로 시작한 교육은 회기를 거듭하면서 알코올중독은 질병이란 것을 알았고 환자(남편)가 이해됐고 남편에 대해 얼었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해가 되니 내 마음이 편해졌고 처음에 어색하게 내가 왜 알코올병원을 드나들어야 하는지 자존심도 상하고 누가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데 창피했습니다. 교육에 참여하면서 빠르게 받아들였고 너무 무지해서 술 먹는 남편에게만 모든 문제를 전가한 것 같아 측은하고 미안한 마음과 많이 힘들고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아넌 모임도 나가고 알코올중독 가족을 위한 집단프로그램도 참여하면서 내 자신이 치유가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나는 더욱 열성을 다해 추천 도서도 열심히 읽고 적극적으로 교육에 임했습니다. 내 감정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면서 내 자신이 소생하는 느낌이 들었고 활력과 희망이 샘솟았습니다. 공동의존이란 말도 다사랑중앙병원에서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공동의존이 아닌데하는 의구심이 들었고 인정을 안했습니다. 하지만 공동의존이었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습니다. 인정을 하고 나니 모든 문제가 왜 그렇게 흘러갔는지 알게 됐고 편해진 마음은 고스란히 남편에게 전달이 됐습니다. 면회만 하면 퇴원해서 돈 벌어야 한다, 이제 술 안 먹는다, 입원해 있어야 별 소용없다, 똑같다는 여러 이유로 퇴원을 종용했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프로그램에 만족했고 주치의 선생님, 모든 선생님들이 친절했고 무엇보다 상담사님들이 열성을 다해 내 가족처럼 치유를 위해 애를 쓰는 모습에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또한 보호자 교육이 없었다면 나는 예전과 똑같은 말투, 행동을 했을 것이 뻔한데 변화를 꿈꾸게 해준 다사랑중앙병원에 다시 한 번 감사함을 느낍니다. 공동의존에서 분리되는 연습을 하고 있고 또다시 넘어질지라도 위대하신 신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자포자기가 아닌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 병원에 왔을 때 큰 기대 없이 술과 분리시켜서 이혼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상담사님께도 이혼을 할거예요.’라고 말했더니 이혼이 답이 아니라고 말해준 상담사님께도 고맙고 퇴원을 하려면 한 달 정도 남았는데 막바지를 향해 열심히 해주는 남편께도 고맙고 감사합니다. 남편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병원 생활, 하루에도 몇 번씩 갈등하는 환자를 바로 잡아주고 알코올중독자임을 인정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겠다고 꿈을 꾸게 해준 병원 측 관계자와 상담사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