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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랑중앙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분들의 생생한 회복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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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다사랑 재활수기 공모전] 우리에게는 다사랑과 A.A.라는 울타리가 있다
등록일 2021-02-09 조회수 348 이름 다사랑
첨부파일 2016환자회복수기_썸네일.jpg

[2016 다사랑 재활수기공모전 5등 충만함상]

 

우리에게는 다사랑과 A.A.라는 울타리가 있다

OO

 

200911월 중순, 음주운전 단속에 걸린 나는 단속경찰관을 폭행하고 잠수를 타며 지내다 가족들과 상의 끝에 일산 모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다. 여러 가지 검사 결과 중증 알코올 의존증과 조울증, 지방간이라는 진단을 받고서 격리병동에서 병원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알코올 의존증 환자라면 내 주변에 나보다 더 많은 음주를 하는 많은 사람, 또 친구들은 뭐야?’ 라는 의구심과 신빙이 가지 않는 의료진, 연락도 할 수 없는 생활. 꼭 교도소와 같은 환경이다. 교도관(보호사)와 죄수(환자) 같은 기분이 든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식구들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밀려왔지만 일단은 참자, 우선 이곳을 나가야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끝장을 볼 수 있다는 생각뿐이다.

 

시간은 흘러 자유가 있는 병동으로 옮겨져 정해진 규칙대로 여러 교육을 받고 A.A.모임에도 참석했지만 아무 흥미가 없다. 김포나 마포, 영등포 등 원외로 구경하러 다니는 기분으로 다닐 뿐이다. 특히 A.A.모임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사이비 종교집단도 아니고 자랑거리라도 되는 양 자신의 치부를 들어내고 떠드는지, 또 웬 여자들도 그리 많은지 전부 정신이상자 같기만 했다.

 

결국 추운 겨울을 따뜻한 곳에서 보내고 봄꽃이 만개한 4월 말경 퇴원을 하게 되었다. 변하지 않은 나의 음주습관과 툭하면 이어지는 사고(폭행)로 인해 또 다시 강서 모 병원과 강화 모 병원 등을 거치며 성격은 더욱 난폭해지고 음주는 늘어만 갔다. 이러는 사이 점점 더 식구들과의 관계는 멀어져만 갔고, 술에 취하면 주사가 시작되어 너희들 때문에 내 신세가 이렇게 되었다이 꼴이 원하는 길이면 얼마든지 더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협박성 발언과 생트집을 잡고 늘어지기 일쑤였다.

 

자업자득인지 20134월 말경 처의 투병 생활이, 그것도 암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독한 항암제 때문인지 표적치료제 때문인지 구토가 심하여 수액주사로 연명을 하니 아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뭉턱뭉턱 빠져 버리는 머리, 뼈와 피부 껍데기만 남은 미라 같았다. 그런 처를 보면서도 무기력하고 어찌할 도리가 없는 나는 틈만 나면 술에 의존하며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었다. 오전 주치의 회진시간에만 맑은 정신이었을 뿐 그 시간 이후로는 멍한 정신으로 시간을 보냈다. 식음을 전폐하다보니 나 역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점점 통증을 호소하는 아내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 진통제 주사로 겨우 잠든 모습을 쳐다보니 그제야 미안했구나, 너무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0여년을 같이 살았고 두 딸을 성장시켜 사회의 일꾼으로 만들어 주었으며 나의 부모님을 모셔주었고 두 분의 임종까지도 지켜준 사람인데. 나 하나 때문에 경찰서로 피해자 집으로, 술집으로, 너무 죄를 많이 지었다는 자책감이 밀려들었다.

 

결국 처는 20148월 임종실에서 두 딸과 이별을 고하는 말을 하고 나에게는 이제는 나이도 생각하고 두 딸을 위해서라도 술 좀 그만 먹고 성질대로 싸우지 말고 좀 너그러운 사람으로 두 딸을 부탁한다며 미안하다고 하더니 조용히 주님의 품으로 영원히 영면에 들어갔다.

처의 사후 무력감에 고삐가 풀린 나는 지금까지의 생활을 반성은커녕 처와의 마지막 유언도 잊은 채 두 딸이 출근하면 굶주린 개처럼 술판을 기웃거리고 늘 검은 봉투에 일용할 양식(소주)를 들고 다니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하루는 작은딸이 나와 말다툼 끝에 친구네 집으로 가고, 나는 편의점에서 사온 소주와 처가 먹던 수면제를 함께 먹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늦게 퇴근한 큰 딸 덕에 병원 응급실에서 위세척 등 고생만 잔뜩 하고 퇴원을 하게 됐다. (요즘 수면제는 많이 먹어도 죽지 않는 모양이다. 고생만 한다. 멍청한 일이다.)

 

한동안은 죽이고 술이고 먹기만 하면 속에서 거부 반응이 일어났고, 어느 때는 생수조차 구토로 이어졌다. 하지만 회복 이후에도 음주는 계속됐다. 연일 계속되는 술로 인해 공원에서 쓰러져 머리를 12바늘을 봉합하고 퇴원하기도 했고, 집에서 쓰러져 눈썹 부위를 6바늘 꿰매기도 했다.

 

1221일 만취 상태에서 깨어보니 또 다시 병원이었다. 그렇게 다사랑중앙병원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3병동, 전부 늙은이만 득실거렸다. 무슨 요양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틀 지내보니 별반 나이 차가 나진 않은 듯했다. 동년배로 있고 한데 행동거지는 시세말로 완전히 꼰대들 같았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술 때문에 금단증상과 알코올성 치매가 있는 환자가 많다고 한다. 그 말에 참 한심하다고 여기는데 문든 그럼 나는 무엇인가, 나 역시 저런 모습으로 안 된다는 보장이 없다. 정말 이제는 단주해야 내가 남은 생이라도 반듯하게 살아갈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계속되는 교육과정과 수시로 상담사와 상담, 폐쇄병동에서 개방병동으로 전동하여 9주 과정을 마쳤다. 원장님과 상담사님은 퇴원하지 말고 재활병동에서 더 생활을 하라고 계속 권유했지만 자만심에 빠져있던 나는 모든 과정을 마치고 524일 퇴원해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귀가 후 3일째부터 음주를 시작했고 개 버릇 남 주나하는 말처럼 또 다시 장취에 빠져버렸다. 실망한 두 딸의 어두워진 모습, 두려워하는 표정, 큰딸의 눈물어린 호소가 이어졌다. 너무나 불안하단다. 출근을 해도 아빠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아니면 또 어디서 쓰러졌다고 연락이 올까봐 손에 일도 잡히지도 않다며 아빠도 힘들겠지만 다시 입원하여 병을 고치면 어떻겠냐고 내게 물어본다. 우선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생각에 빠졌다. 한 잔 술에 재입원, 또 한 잔 술에 아니라고 부정하기를 반복했다. 일주일 만에 재입원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 창피하다는 생각과 내가 정말 결단력이 없나 하는 생각으로 밤새 뒤척이며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그래, 12단계에 나오는 밑바닥치기부터 시작하자. 내 얄팍한 자존심부터 버리자를 각오로 새기고 관리병동, 개방병동 과정을 마치고 831일부터 재활병동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9단계 발표 때 원장님이 주신 매일의 명상을 꺼내 하루에 한 페이지씩 써 내려가자는 생각에 91일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오고 있다. 노트 여백에 간단한 메모를 곁들이니 생활에 도움도 많이 됐다. 여러 책에 있는 것을 요약해 놓아서 외우기도 쉬웠다.

 

내 경우는 일종의 부적처럼 A.A.수첩을 외출이나 외박 시에 지참하고 다닌다. 술자리 같은 곳에서 갈등이 일어날 때는 수첩을 꺼내 서문부터 읽어보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덕분에 이제는 술자리이건 모임이건 피하지 않는다. 살아가려면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술자리가 있겠는가. 정면으로 부딪쳐야 한다. 연민이나 과거에 흔들리지 말고, 술 대신 음료수나 생수 등 대체할 방법은 있다. 흡연자가 있고 비흡연자가 있듯이, 술 역시 마실 사람도 있고 못 마시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원내 재활로 벌어드린 수익금으로는 잊고 있던 나의 취미를 찾아 미흡한 부분에 투자를 해서 나의 것, 나의 즐길거리를 만들고 있다. 또 요양 보호사에 등록하여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공부를 할 예정이다.

 

다시 시작이다. 2의 노년의 인생을 위해

 

환우 여러분!

좌절과 시련이 와도 포기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붙잡을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퇴원을 반복하는 환우들을 보면 가슴이 안타깝고 나는, 내 자신은 어떤가하는 생각에 두려움도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A.A.라는 울타리가 있습니다. 타인에게 친인척에게 창피하고 마음이 아파서 꺼내놓지 못하고 감추어 놓은 상처 받은 이야기를 나누고 듣다보면 어느새 서로가 보듬고 이해하며 마음의 상처를 어르고 달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다사랑중앙병원이라는 전문 의료기관과 A.A.모임이라는 공동체가 아니면 어디 어느 곳에서 이와 같은 심정을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서로 삶의 이야기를, 넋두리를 들어주며 또한 자신의 이야기도 하며 서로의 고통을 나누면서 단주라는 목표를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더욱 성장해 나아가야 합니다.

 

저 역시 근간에 알았고 그렇게 지내고 있지만 술 없이도 얼마든지 여흥도 즐길 수 있고 보람되게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게 단주라는 목표를 가지고 회복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빌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