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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알코올 중독 회복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사람마다 마음의 그릇이 있다!
등록일 2022-11-17 조회수 4184 이름 138903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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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알코올 중독 회복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사람마다 마음의 그릇이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머니께 맞으며 자랐고, 아버지는 ‘말’로 나의 마음을 때렸다. 유아기에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란 나는 애정결핍이 있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너 때문에 엄마랑 싸운 것이다. 너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너 때문에”라는 말을 많이 하셨다. 이런 말을 계속 듣고 맞다 보니 부모님이 싫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싫다는 감정은 원망이 쌓여서 계속 불어났다.


 부모님이 나를 이렇게 키웠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것이라고 탓을 할 이유는 충분했다. 투사는 어머니의 말이 증폭제 역할을 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 너무 때려서 미안하다. 사랑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나 때문에 네가 이렇게 된 것 같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살아오면서 내가 가족에게 상처 준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 말은 당연히 내가 들어야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어머니의 말은 내가 술을 마실 이유가 충분했다. 어머니의 감정을 이용해 더 심하게 술을 마셨다. 이기적인 내 마음은 옆에서 마음의 병을 얻고 있는 가족을 보지 못한 채 조금씩 천천히 나는 나를 파괴하고, 가족을 갉아먹었고,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가정환경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부모님도 나를 이렇게 키우고 싶어서 이렇게 키운 것도 아니고, 나는 알코올중독에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것이 아니다.

나로 인해 가족이 병들어가는 것이 보였을 때,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과 자괴감이 나를 감싸 안았다. 마음속에 있던 원망과 증오했던 감정이 사그라들었을 때, 나는 술 마실 이유를 만들기 위해 그 자리에 죄책감과 자괴감이라는 다른 감정을 마음속에 눌러 담았다. 이렇듯 알코올중독에 걸린 나는 정말 간사하고 합리화를 시키면서까지 술을 마셔왔다.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나와 내 가족이 병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술을 마시는 행동은 멈출 수 없었다. 감당할 수 없게 된 내 감정들을 술로 달랬고, 술로 나를 학대해왔다.

 

 2019년 10월을 첫 입원으로, 27살부터 다사랑중앙병원에 여섯 번의 입퇴원을 반복해왔다. 3년 동안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처음 입원 당시 무지했던 나는 알코올중독자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합리화했지만, 점점 나의 술 문제가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마음속에선 ‘아니다 나는 술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다. 본질적인 문제는 ‘술을 안 마시는 것’인데, 과거에 병식이 없던 시절부터 생각해보면 음주 방법과 주종, 양, 패턴 등을 바꿔보려고만 무던히 노력했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서히 알코올 의존의 단계를 넘어 알코올중독의 깊고도 긴 빛이 없는 어둠의 길로 계속 숨어 들어갔었고, 결국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해버렸던 나는 이제는 알고 있다. 아니 살면서 계속 마음에 새기고 있을 것이다. 술을 마시면 결과는 죽음 밖에 없다는 사실을.


 타 병원에도 한 번의 보호입원이 있었고, 다사랑중앙병원 여섯 번의 입원 중 마지막 입원을 제외하고 다섯 번이 보호입원 이었다. 다사랑중앙병원 마지막 입원 전, 다사랑중앙병원이 아닌 타 병원에 입원했다. 그 병원에서의 8개월 동안 폐쇄병동 생활은 내 의견과는 상관없이 입원 기간이 늘었고, 병원 복지도 좋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병원에 보낼 수 있는지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알코올중독 환자분들 말고도 정신병 환자분들도 많았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예민해져 갔다. 부모님께 수도 없이 퇴원 요구를 했지만, 절대 들어주지 않았다. 반복되는 퇴원 요구에 부모님과 마찰이 잦았다. 퇴원을 위해서 교묘하게 나는 알코올중독자인 ‘척’을 했다. 진심인‘척’, 인정하는 ‘척’했고, 퇴원을 위해 부모님께 가지고 있는 좋지 않은 감정을 숨겼다. 퇴원 직후에 강제로 입원하지 않을 정도로만 술을 마셨고, 음주 생활이 가능하다고 억지로라도 믿었다. 4개월의 조절음주 끝엔 장취로 이어졌고, 약과 술병을 손에 쥐고 있었다.


 마지막 술잔을 든 날, 여름이라는 계절 어느 날 하늘에서 태양이 하염없이 빛을 내리쬐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아침부터 하루하루를 바쁘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 사이에서 오직 술만을 생각하며 초라한 행색으로 식은땀이 나고, 불안한 시선으로 편의점에 술을 사러 가고 있었다.


 괜히 혼자 제 발 저리듯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걸음을 이어 나갔다.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를 본 사람들은 내 얘길 하는 듯 한 느낌을 받으며 집 근처의 술을 사러 갔던 편의점을 들어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페트병 소주 3병을 집어 들고 계산했다. 자주 갔던 편의점이라 아침에 술을 사가는 나를 이상하게 보진 않았다. 편의점 사장님은 술을 너무 자주 마시는 것 아니냐고 걱정을 해주었지만, 얼른 그 자리를 뜨고 싶었던 나는 괜찮다며 실없는 웃음으로 대화를 끝내고 도망치듯 편의점을 나왔다. 검은 봉투에 소주를 들고 바로 옆에 있는 약국도 들어가 수면 유도제와 타이레놀 두 팩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이 외출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방으로 들어가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다. 술로 찌들어 있던 내 정신은 나 자신을 경멸하고 또 경멸했다. 살면서 가장 서럽게 울고 또 울고 흐느꼈다. 지금도 이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술을 마시는 이유는 간단했다. 나를 최대한으로 불쌍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만들면 그만이었다. 나는 술을 마시기 위해서 나를 쓰레기로 만들어야 했고,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도 나보다 불쌍한 사람이 있겠느냐고 합리화했고 반복적으로 생각했다. 나를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취급했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술을 병째로 들이키면서 약 흡수가 빨리 되게 하려고 원래 가지고 있던 수면제와 약국에서 사온 약을 하나씩 하나씩 반으로 쪼개기 시작했다. 다른 생각은 나질 않았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모든 상황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결심하고 다 쪼갠 약을 입에 다 털어 넣고 남은 술이 다 떨어질 때까지 들이부었다. 내가 죽은 뒤에 있을 일은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런 고통 없이 죽기 위해 약을 선택한 그 순간까지도 나는 이기적이었다. 약기운과 술기운이 몸으로 퍼지는 게 느껴졌다. 의식이 조금씩 사라져갔다. 


 죽지 못한 채 다음 날 아침이 돼서야 긴 잠에서 깼다.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고, 숙취로 속은 장이 꼬이고 뒤틀린 듯한 고통을 느꼈다. 깨고 나서 마음속에 자리 잡은 자괴감과 자책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내 마음을 후벼 팠다. 약과 술을 입에 털어 넣는 행동을 이틀을 더 반복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나는 계속 헛구역질을 하며 바닥에서 나뒹굴었고 몸은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방에 들어온 부모님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창피하고 자책감이고 뭐고 없었다. 부모님께 말했다. 살려달라고, 진심으로 술 마시지 않겠다고, 다사랑중앙병원에 보내달라고 울부짖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을 때 살고 싶다는 생각은 정말 대단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생존본능을 느껴볼 수 있었다. 다사랑중앙병원에 입원하기 전 일반병원 응급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응급실에서 누워있는 동안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를 깨닫게 되었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 있는 상태였지만,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30년 동안 살아온 내 인생 필름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나갔다. 여태까지 술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한 내 마음을 바꾸게 된 날이었다. 나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로 인해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냈던 가족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집으로 똘똘 뭉친 제 머릿속의 실 뭉치가 조금씩 풀려가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과거에 얽매여 나를 불쌍하게만 생각했던 마음을 덜어냈다. 이 날 과거의 일로 후회하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3년간의 방황이 끝나고, 나의 의지로 다사랑중앙병원에 입원한 것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다시 태어났다는 마음가짐으로 병원 생활에 임했다. 잦은 입퇴원으로 병동 생활은 금방 적응할 수 있었고, 병원 치료진분들도 모두 잘해주셨다. 응급실에서 하루를 보내고 입원했더니 신체적으로는 금방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관리병동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여태까지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알코올에 관한 책들을 정독했다. 다 아는 내용이라며 대충 들었던 교육을 빠짐없이 집중해서 들었다. 상담사님과의 지속적인 면담을 통해 얻게 되는 지식과 도움은 단주하겠다는 나의 의지를 더욱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교육 시간에 집중하니 알코올중독 문제에 대해서 새롭게 배우는 느낌이 들었다. 게을러지지 않으려고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다사랑중앙병원의 힘은 참 신기했다. 그렇게 1단계 발표를 준비했다. 총 세 번의 1단계 발표가 있었지만, 진심으로 단주하겠다고 마음가짐이 달라지니 정말 신기하게도 더 정직하게, 심도 있게 술 문제들을 되짚어 보면서 진심으로 나는 술 앞에 무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시인할 수 있었다.

 알코올중독자임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시인하고 개방병동으로 전동 했다. 개방병동에서의 나의 중점적인 목표는 ‘자기 객관화를 생활화하기’다. 일단 술이다. 개방병동에서만이 아니라 인생 살면서 술에 대한 경각심을 더 철저하고 깊이 있게 내 인생에서 떨어뜨려 놓을 것이라 다짐했다.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으면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 살아가면서 어떤 것이든 배워가는 것이 영적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서 주인공은 가족도 아닌, 다른 누구도 아닌 ‘나’다. 궁극적으로는 내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힘쓰고 있다. 내 인생을 술로 인해서 더 이상 낭비하고 싶지 않다.

 개방병동에서는 더 철저하게 나의 감정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감정의 요동이 있을 때는 상담사님과의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서 하루하루 나를 검토해나갔다. 전동 후에도 교육을 빠짐없이 집중해서 들었다. 의구심 따위는 사치였다. 치료진들이 도움을 주면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따랐다. 


모든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던 마음가짐부터가 알코올중독의 시작이었다.

 

A.A의 중요성도 받아들이고 인지했다.

 조금씩 들리는 경험담들이 많아지고, 공감하고, 느껴보고, 내 경험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A.A의 효과는 굉장했다. 과거의 술 문제들을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온함을 찾을 수 있었다. 알코올중독자는 술로 인한 고통의 시간, 상황, 환경이 사람마다 다르지만, 술로 인한 고통과 아픔의 감정은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A.A가 단주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이야기하며, A.A의 멤버들이 A.A에 계속 매달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이 A.A에 매달릴 것이고, 억지로 믿는 것이 아닌, 믿어진다고(믿게 되었다!) 하는 A.A의 이야기처럼 점차 A.A가 나에게, 내가 A.A에 스며들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하고 참여할 것이다.


사람마다 마음의 그릇이 있다.

 한번 금이 가고 깨진 그릇은 다시 붙여도 언젠간 다시 깨진다. 이제는 예전에 깨졌던 내 그릇을 다시 붙이려고 노력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나는 담을 수 있을 만큼의 크기와 모양의 새로운 그릇을 빚고 있다. 아무리 잘했던 선택에도 모든 선택에는 후회가 따른다. 앞으로 내 선택에서 오는 조금의 후회도 책임질 것이고, 그 책임을 지면서 더욱더 단단한 그릇을 빚을 것이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지 않고, 최선을 목표로 삼고 살아갈 것이다. 이 다짐이 나의 단주의 길이자 신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