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알코올 중독 가족수기] 당신을 지켜줄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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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1-02-09 | 조회수 | 715 | 이름 | 다사랑 |
첨부파일 | 2019-가족수기_썸네일.jpg | ||||
[2019 가족수기 공모전 참가상] 당신을 지켜줄게 신○○ 남편은 세브란스 병원 정신의학과를 큰집 드나들 듯 했다. 알코올로 인해 위협받는 장기를 잠시라도 쉬게 해주기 위해 입원을 해야만 했다. 계속되는 음주로 간, 췌장 질환과 알코올성 치매까지 진단을 받았다. 남편은 표창장도 여러 번 받은 성실하고 우수한 서울시 공무원으로 퇴직했다. 오직 직장과 집밖에 몰랐던 사람이었다. 술을 좋아하면서도 단주를 해야 할 곳에서는 정확하게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2년 동안 단주도 했었다. 나는 그 때가 봄날처럼 따뜻하고 행복했다. 그런데 행복도 잠시, 위에 암으로 가는 혹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날부터 본인은 마시고 싶은 술을 참아서 스트레스로 혹이 생겼다며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오전 10시만 되면 직장에 출근하듯 술을 마시러 나갔다 늦게 만취상태로 집에 들어왔다. 안주로 장모님이 서운하게 했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기억해 가면서 6~7시간을 쉬지 않고 마구 떠들어댔다. 아파트에 살면서 이웃에 창피하고 미안했다. 이웃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이려고 여름에는 문을 꼭 닫고 에어컨을 켰다. 집에 혼자 있다가 남편이 들어오는 문소리만 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덜덜 떨었다. 나는 제 빠르게 숨었다. 남편은 온 집안을 뒤지며 아내인 나를 찾아 다녔다. 몇 시간 숨을 죽이고 쪼그리고 앉아있으면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매일매일 똑같은 생활에 멀미를 느끼며 죽고만 싶었다.
나는 베란다에 꽃을 가꾸기 시작했다. 화원에 가서 1그루, 2그루 사다 심은 꽃들이 어느새 100그루가 되었다. 남편이 들어와 주정을 부릴 때면 나는 베란다로 나갔다. 꽃은 내 마음을 아는 듯 눈웃음으로 나를 감싸주었다. 꽃은 내 친구, 꽃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울적했던 마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르르 정화되었다. 파란 잎이 새로이 돋아나고 꽃이 피는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힘든 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다. 술 하나로 인해 가족을 힘들게 하고 인생을 의미 없이 살아가는 남편이 미웠다. ‘어쩌다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이렇게 왔는지’ 본인정신이 아니라는 안타까운 생각에 측은지심이 들었다. 종합병원 정신의학과 외래가 있는 날로 뇌 MRI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검사결과 남편의 전두엽이 많이 작아졌다고 했다. 전두엽은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부위로 술을 마시지 않도록 제어해주는 마지막 브레이크라고 했다. 그런데 남편은 이 브레이크가 과음으로 인해 파열됐다고 했다. 뇌가 술이라는 자극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려면 5년간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아야 한다고 주치의는 말했다. 환자분은 심장 수술을 두 번이나 해서, 심장에 부담이 될까봐 약을 더 이상 높게 쓸 수가 없다며 환자를 격리 시키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종합병원은 장기간 입원이 어려웠다. 주치의는 “저의 병원에서 3주간 입원해서 알코올 해독시키고, 우리가 추천해주는 의왕에 있는 알코올 전문 다사랑중앙병원병원으로 가세요.” 라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여보! 알코올 치료 잘 받고, 젊었을 때처럼 성실하고 자상했던 아버지로, 남편으로 돌아가서 노후를 남이 부러워하는 멋진 삶을 살아봅시다.” 그랬더니 남편은 그렇게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우리는 퇴원해서 곧바로 다사랑중앙병원으로 갔다. 집에서 꽤 먼 거리였다. 원장님과 상담을 하고 입원 수속을 마쳤다. 선생님이 안내하는 입원실로 갔다. 사람들이 들어가면 문이 자동으로 철커덕 잠겼다. 모두 색이 다른 환자들을 보호하려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시설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넓은 옥상이 공원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환자들은 옥상에 나가 좋은 공기를 마시며, 가벼운 운동도 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깨끗해서 마음에 들었다. 남편이 금방 환우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는 것을 보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담당 선생님이 자상하고 친절하게 환우들의 병원생활 이야기를 설명해 주셨다. 선생님은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하며 전화번호를 줬다. “여보 잘하고 있어, 자주 올게.”하며 돌아서 오는데 큰 가시에 찔린 듯 온몸이 따끔거렸다. 병원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 교육이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간식을 준비해 연애 할 때처럼 남편도 만나고 교육도 받으러 꼬박꼬박 먼 길을 갔다. 남편을 쳐다보았더니 얼굴도 좋아지고 한결 안정된 모습이었다.‘ 아! 이래서 전문 병원이 필요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다른 환자 보호자들과도 단주에 관한 좋은 의견을 서로 나누며 연락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코피를 많이 흘렸다고 한다. 심장병 환자이기 때문에 항상 위험부담이 있었다. 와파린을 복용하면 혈관이 얇아져서 코를 세게 풀기만 해도 코피를 심하게 쏟았다. 남편은 “이제 술 생각도 안 나고 술 마시는 것도 잊어버렸으니 한 번만 믿어줘.” 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남편을 퇴원시킬 마음의 준비도 안 됐고, 나와서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앞섰다. 일단 가족회의를 했다. 자식들은 술집이 없는 지방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가시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는 그렇게 유배를 떠나는 것마냥 충남으로 떠났다. 원룸을 얻었다. 바다가 있고 산도 있는 공기 좋은 곳이었다. 남편과 산책도 하고 바다에 나가 바지락도 캐고 다시 신혼처럼 행복을 느끼며 6개월을 넘게 살았다. 남편은 전혀 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제는 집으로 가도 되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다시 굳은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왠지 항상 불안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를 결심 할 수 있는 자아가 남아 있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 중독자로 남아 세상을 탓하며 고난이 가득한 삶을 감내할지, 회복자가 되어 변화를 시작할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에 남편에게 도움이 될까하고 치매와 알코올 중독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읽었다. 한 줄기 빛이 보였다. 아직,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것을......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는 것은 가장 절친한 친구와 절교하는 일과 같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남편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몇 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생활 속에 보람을 느낀다. 다사랑중앙병원 입원 중에 선생님들의 교육과 영상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리의 노후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준 다사랑중앙병원 원장님과 여러 선생님들께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