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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회복수기

다사랑중앙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의 가족분들이 보내주신 생생한 경험담입니다.
알코올중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치료의 조력자가 되어 가정의 평화를 되찾으신
알코올중독자 가족들의 회복수기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알코올 중독 가족들에게 큰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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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알코올 중독 가족수기] 어두움의 긴 터널을 지나 밝은 빛으로 나아가리라
등록일 2021-02-09 조회수 1264 이름 다사랑
첨부파일 2019-가족수기_썸네일.jpg

[2019 가족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어두움의 긴 터널을 지나 밝은 빛으로 나아가리라

 

○○

 

! ! ! “계십니까? 계십니까?”

밤새 뒤척이다 겨우 얕은 잠에 들었을 때 잠자리가 뒤숭숭합니다. 꿈인 줄 알았는데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라는 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집니다. 몸을 일으켜 나와 보니 온 집안의 전등은 다 켜져 있고 시계를 바라보니 새벽 320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딸의 불안정한 움직임이 보이고 이어 눈을 껌뻑거리며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게 무슨 일인 거야!’ 혼자 중얼거리며 누구세요?”

경찰입니다, 신고 접수가 되어 방문했습니다. 문 열어 주십시오.”

집 안으로 들어선 경찰은 2명이었는데 딸의 신원을 확인한 후 신고 이유를 재차 물어봅니다. ?딸이 112에 위급하다며 신고를 하여 출동한 경찰이었습니다. 이내 딸이 망설임 없이 대답합니다. “내 방에 나 모르게 감시 카메라를 달아놓고 일거수일투족을 하루종일 감시하고, ?누군가가 창문으로 나를 계속 노려보고 있어요. 제발 범인 좀 잡아주세요.”

 

그 상황에 어리둥절하여 바라보다 딸의 모습을 세심히 관찰합니다. 경찰 2명은 정돈되지 않은 어수선한 딸의 방으로 들어가 구석구석 이곳저곳 둘러보며 천장이며 벽도 자세히 관찰하였습니다. 창문은 안으로 굳게 잠겨 있었고, 암막 커튼은 바깥 세상의 빛을 완전히 거부한 듯 내려져 있었고 어떤 이상함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경찰은 방 안에서 나와 딸과 다시 면담을 합니다.

 

누가 나를 노려보며 감시해요! 미칠 것 같아요! 정말이라고요!”

딸은 횡설수설하며 정확치 않은 목소리로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이내 경찰은 저를 바라보다가 어머니 되십니까?”

, 제가 엄마입니다.”

제 의견으로는 경찰에 신고하실 것이 아니라, 따님을 신경정신과 쪽으로 치료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경찰이 돌아간 뒤, 딸과 마주 앉아 눈을 쳐다보니 불안한 눈빛에 손을 덜덜 떨고 있습니다. ?묻고 싶은 말이 있었으나 알아들을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딸에게 저는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며 들어가 자거라. 경찰 아저씨가 확인해보니 아무것도 없다 하니 불안해하지 말고.”라고 말했습니다.

 

벌써 진작부터 시작되었던 알코올 중독이 깊어져 환청, 환시, 망상 등의 증상을 딸은 겪고 있었고 저 때가 바로 직접 내 눈으로 목격하고 딸의 심각성을 인지한 첫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변심한 남편이 거의 매일 만취해 들어오는 날이 계속되었고 그런 날에는 술에 취한 채 온 집안의 기물과 집기를 파손했습니다. 주폭으로 변해버리는 무서운 남편... 겁에 질린 두 어린아이와 함께 책상 밑에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숨어서 숨소리를 죽이며 남편이 지쳐 잠에 들기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 엄마를 의지하고 있는 어린 두 자녀 앞에서 부모로서 올바르지 못한 모습도 많이 보였던 부족한 부모였습니다. 제 어린 시절, 부모님은 흔한 말다툼 한 번 없는 금실 좋은 부부였습니다.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 속에 성장한 나는 이런 상황이 너무나 당혹스러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늘 두 아이와 벌벌 떨어야 했습니다.

 

매일 술에 취해 세상을 비관하기만 하던 남편이 하루 아침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백일이 지난 어느 날, 큰아들이 말했습니다. “엄마 난 해가 지는 저녁이 싫었어. ?가슴이 자꾸 쿵쾅쿵쾅 떨리고 아빠가 올 시간이 되면 무서웠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저녁때가 돼도 가슴이 쿵쾅대지 않아요.” 그러자 옆에 있던 딸이 엄마 나도 심장이 벌렁거렸는데.. 술 냄새는 정말 지독해서 싫었어. ?지금은 술 냄새가 나지 않으니까 살 것 같아요.”라고 말하더군요. 어린 두 자녀의 말을 듣고 참으로 미안하면서 슬펐습니다.

 

안정되지 않았고 여유롭지도 않아 저는 항상 바쁘게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어려움이 온다 해도 내 아이들은 내가 지킬 거야. 엄마가 행복하게 살도록 노력할게!’라고 굳게 다짐을 했습니다. 어린 두 자녀와 함께 33살의 젊은 엄마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이 세상을 마주하며 열심히 살아갔습니다. 아들은 무던하니 심지가 굳고 모범적으로 성장하며 엄마 말에 항상 순종하는 선한 성격이었습니다. 딸도 예의 바르고 인정 많아 엄마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었고 제가 비운 집안일이며 가게 일도 말없이 도와주는 착한 딸로 잘 성장하는 듯했습니다.

 

딸이 대학에 들어가 학생회 일을 맡으며 잦은 회식에 술을 가까이 하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빠를 닮아서 딸도 술을 좋아하는구나. 대학생이면 공부를 해야지 술 먹으러 대학 들어간 것 같네.’라는 생각을 했지만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지내왔던 딸이었기에 대학생이니 술은 마셔도 된다고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훗날 엄청난 비바람을 몰고 와 태풍이 몰려올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대학 2학년 때, 소화도 안 되고 속이 아파 배를 잡고 빌빌 기어 다녔다며 많이 아프다는 딸을 데리고 가까운 대학병원에서 위내시경을 비롯한 종합검진을 했습니다. 결과는 너무나 충격이었습니다. ?겨우 21살인 딸의 위가 매일 술을 마시는 건설 현장의 50대 아저씨의 위와 같으며 알코올 의존 중증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내과와 정신과를 병행해 약물과 심리치료를 받았습니다.

 

알코올 중독에 대한 병식이 전혀 없던 당시의 저는 딸에게 술도 음식이지만 과하게 먹으면 독이 되니 자제해서 기분 좋을 정도로만 먹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했습니다. 걱정이 앞서면서도 엄하게 말하면 딸이 기분 나빠할 까봐 눈치 보며 타이르듯이 얘기했습니다. 자기 몸도 아팠으니 알아들었겠거니 하고 넘겼습니다. 그 후에도 아플 때마다 병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식은땀이 온몸이 다 젖을 정도로 매일 흘렀다고 합니다. 그러기를 여러 날이 지나고 결국 쓰러지기까지 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한방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몸의 호르몬이 변이되어 땀샘이 제 기능을 못해 땀구멍이 계속해서 열려있는 상태가 지속돼 탈진이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술로 인해 몸이 서서히 나빠지는 과정이었습니다. 한방병원이 최신 의료시설을 갖추고 있어 한약과 침, 물리치료, 마사지를 받으며 몇 개월간 집중 치료해 회복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만취한 딸의 전화를 받고 한밤중이나 일하는 중에 시도 때도 없이 딸에게 달려가야 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딸이 자해를 해서 병원 응급실에 누워있는 기막힌 모습도 보게 되었습니다. 우울증 증세도 알코올 중독과 함께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대로는 독립된 생활이 어렵다는 생각에 딸을 설득해 집으로 데리고 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이 세상에도 생지옥이 있다는 걸 처절히 생생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받으러 신경정신과를 외래로 1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딸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딸아이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가족과 마주치지 않으려 두터운 마음의 벽을 쌓아놓고 스스로를 가두었습니다. 가족이 집을 비웠을 때만 살며시 나와 있다 가족이 들어오면 마주치지 않으려고 얼른 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그곤 했습니다.

 

어느 날, 퇴근해 들어오니 화장실에서 일을 보다가 그대로 찬 바닥에 쓰러져 잠들어 있는 이상하게 변해버린 내 딸이 있었습니다. 한 집에 함께 살면서도 며칠 만에 보는 건지 아니, 얼마 만에 보는 건지 딸은 아주 보기 싫은 추한 노숙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차가운 타일 위에 누워 역한 냄새가 나는 내 딸 같지 않은 딸을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샤워기로 물을 뿌려가며 씻기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모습으로 하루를 견디고 있을까?’ 하며 현관문을 열었는데 거실 카펫이 깨진 화분과 오물로 완전 초토화돼 있었습니다. 망연자실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가 깨진 도자기 화분부터 치워야 할 것 같아 청소를 급하게 시작했습니다. ?딸은 이미 만취해 화분에서 나온 흙더미 위에 큰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습니다. 깨진 도자기 화분들을 서둘러 치우다 날카로운 한 면이 손등을 푹 찔렀습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 당황해 우왕좌왕했습니다.

술에 취한 딸을 흔들어 깨워 엄마가 손을 못 쓰니 119로 전화해 구급차 불러달라고 말했지만 딸은 휴대폰을 들고 몹시 당황해 손을 떨면서 번호를 제대로 누르지를 못했습니다. ?몇 번을 더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전화번호를 누르지 못하고 방으로 도망치듯이 그냥 들어가 버렸습니다. 정신이 없었습니다. 피가 너무 많이 나오고 멈추지 않아 운전도 할 수 없어 손을 수건으로 둘둘 감싸 쥐고 홀로 15분여를 걸어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파상풍 주사를 맞고 파편을 빼내고 여덟 바늘이나 꿰맸습니다.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거실을 바라보니 포화가 휩쓸고 지나간 전쟁터 같았습니다. 풍비박산 난 거실에는 흙더미와 깨진 화분들... ?피를 얼마나 쏟았는지 거실 바닥은 검은색으로 변해버렸고 발 디딜 틈 없이 엉망이 되어있었습니다. ?한 달 정도 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회사에서 눈치를 보며 근무해야 했습니다.

일하는 엄마 손을 이렇게 다치게 하니 네 맘은 어떻니?!” 꿰맨 손을 딸의 얼굴에 들이밀며 말하자 딸은 고개를 돌리고 외면했습니다. 내가 화분 조각을 치우다가 다친 것을 딸에게 원인 제공했다며 원망했습니다. 이후에도 평화로웠던 우리 집은 악취로 가득 차고 어둠만 가득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바닥 청소를 하고 오물에 젖은 이불을 몇 채씩 빨아 널어야 했습니다. ?일 년을 쓸 수 있는 세제가 한 달 만에 동났고 새로 구입한 세탁기가 덜덜거릴 정도로 매일 빨래를 했습니다. 한겨울에도 이불을 널어놓으니 이웃들에게 결벽증 환자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걱정되어 방문 고리를 강제로 부수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더니 딸이 신경질적으로 화를 냈습니다. “제발 나를 그냥 놔두세요. 난 죽은 듯이 방안에 가만히 있는데 왜 나를 괴롭히냐구요!” 악을 쓰며 울며불며 초점없는 눈동자에 헝클어진 긴 머리는 오랫동안 감지 않아 뭉쳐있었습니다. “왜 나를 불안한 환경에서 자라게 했나요. 술 먹는 나쁜 유전자를 물려주고 나쁜 피로 태어나게 했냐구요.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다고 나한테 이래요. 난 이대로 죽고 싶으니 방문 열지 말아요. 나가요! 문 닫으라고!!!” 모든 걸 포기한 듯 절규하며 오열하는 딸을 바라보며 저는 그대로 무너진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슬픔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어 지금껏 열심히 살아온 나의 삶이 다 잘못된 것 같고 부질없다 생각되었습니다.

 

매일 어둠의 악순환 속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퇴근하던 중 딸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나 혀가 이상해요. 아파서 물도 못 마셔요. 약국에 들러 약 좀 사다 주세요.” 이젠 말도 어눌하니 잘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정신 놓고 술만 먹어대니 몸이 온전하겠니? 하느님 보시기에도 너무하다 싶어 술 못 먹게 하려고 벌 주셨나 보네.” 아프다는 딸의 말에도 걱정이나 위로는커녕 비아냥거렸습니다. 술에 취한 목소리가 저를 너무 화나게 만들어 곱게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프다니 걱정스러운 마음에 비상약을 구입해 급하게 집안으로 들어서자 ?항상 잠겨있던 딸의 방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입을 벌려보라 했더니 딸의 혓바닥이 온통 검은색이었고 입안이 꽉 차게 부어 있었습니다.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앞이 깜깜해졌습니다. ‘혹여나 설암이면 어쩌지! 혀가 썩으면 앞으로 이 불쌍한 딸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거야. 이제는 하다 하다 말도 못하는 벙어리가 되면 어쩌나!’ 불길한 생각을 가득안고 병원 응급실로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술에 취해있는 상태인데 겁이 나서인지 얌전하게 앉아있는 딸의 모습을 운전하면서 흘깃 보니 애처로워 애간장이 녹을 것 같았습니다. 응급실에서 기본 검사를 마쳤더니 위급환자라며 다급하게 절차를 밟아 급히 딸을 입원시켰습니다. ?일주일간 여러 검사를 하고 내려진 결과는 알코올 중독으로 술을 많이 마셔 온몸의 장기가 모두 제 기능을 못하는 다발성 장기부전이었습니다. 위험수치를 넘어가 있어 예후가 좋지 않으며 딸은 입원 중에도 금단과 섬망이 심해 간호사실로 격리되어 온 몸이 묶인 채로 있어야 했습니다.

 

살아 있을 날이 얼마 안 남았다 생각하니 딸이 너무나 불쌍하고 안쓰러워 제 마음은 숨 쉬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사는 게 바빠 남들 다가는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가본 적 없고 딸과 함께 추억을 만들 시간도 부족하다 생각되니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저의 모든 생활을 접고 오로지 딸만을 위한, 딸과의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 보자 결심하고 떠났습니다. ?

 

지리산 끝자락에 위치한 위급한 환자들이 편히 쉬며 생을 정리하는 시설 좋은 휴식 공간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에서 매일 아침을 기도로 시작해 환자에게 치료가 되는 천연 자연식으로 요리한 음식을 먹고, 편백나무 숲길을 하루에 두 번씩 산행하며 기도와 찬송을 하고, 쉬는 시간에도 성경을 읽으며 이렇게라도 딸과의 평온한 시간을 주신 위대하신 신의 은총에 매일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딸은 얌전히 순응하며 회복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후로도 전국의 유명한 힐링센터를 찾아다니며 보통 사람은 망설이게 되는 비싼 비용을 감당하며 오로지 딸의 회복을 위해 애썼습니다. 그렇게 1년여를 생활하니 푸석하던 딸의 얼굴에 서서히 생기가 돌며 썩어가던 혀도 점차 새살이 돋아 붉은 빛으로 살아나며 염증도 없어졌습니다. 객지를 떠돌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려 입원했던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병원에 예약해 정밀검사를 받은 후 담당 교수님의 진료를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를 컴퓨터로 한참을 들여다보던 교수님께서 딸에게 물으셨습니다.

 

이름은?”

“000입니다.

환자 이름은?”

“000입니다. ?

딸이 이름을 대답하니 다시 세 번째 이름을 물으셨습니다.

본인 이름을 말하세요.”

딸이 대답합니다.

제 이름은 000입니다.”

난 오늘 뒤로 넘어져 머리가 깨져도 기분 좋은 날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회복되어서 오셨는지 얘기해 줄 수 있어요?”

 

담당 교수님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물으니 딸은 그간의 자연생활을 말씀드렸습니다. 모든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자연식을 하며 산을 다니고 기도하고 오늘 하루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지냈더니 마음이 편해지고 우울증은 덤으로 못 느끼겠고 건강해진 것 같다고... 얘기를 다 듣고 난 교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도 비슷한 또래의 딸이 있어요. 그래서 환자분께 마음이 쓰이더군요. 처음 병원에 왔을 때 위험했던 순간을 기억해요. ?그 상태로 망가지고 손 쓸 방법이 없어서 퇴원하신 분들은 다신 이 병원에 오지 못하는 게 현실인지라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환자분의 몸은 이제 모두 완벽하게 정상수치입니다. 이건 기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건강한 몸으로 돌아왔으니 이젠 술을 아주 끊어야 합니다. 이쁜 모습처럼 아름답게 살아가길 바래요. 의사로서가 아닌 아버지의 마음으로 당부를 합니다.” “이제 다시 시작해 보는 거야!!” 저는 딸과 희망에 찬 시작을 외쳤습니다.

 

객지로 떠돌다 집으로 돌아오니 나름 행복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얼마 동안은 운동을 하면서 건강한 생활을 하는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딸의 모습에 조금씩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다시 음주를 시작했다는 신호였습니다. 오로지 딸의 회복을 위해 객지로 떠돌다 온지 얼마나 됐다고... ?죽어가는 딸을 살려보겠다고 제 모든 생활을 포기하고 매달려 살려놨더니 어떻게 또 술을 입에 댈 수가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생지옥이 또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딸은 장취에 들어갔습니다. 술 귀신이 붙은 것 같아 성당 교인의 소개로 기도로 귀신을 물리친다는 기도원에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안 간다고 펄펄 뛰는 딸을 강제로 차에 태워 가기도 했습니다. 기도원에 가는 내내 차에서 울며 매달리는 딸을 냉정하게 외면했습니다. 몇 달을 지내도 꺼내주지를 않자 딸은 그곳에서 도망쳐 혼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는 엄마와 오빠를 원망하며 더 나빠진 상태로 힘들어 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곳에 데려다 놓고 생고생만 하다가 왔다고 저를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딸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딸이 알코올 중독으로 기도원에 갔는데 알코올 중독인 걸 알면서도 딸에게 술을 먹게 하고 봉사라는 명목으로 온갖 잡일을 시켜 집에 상주해 있는 가정부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했다고 했습니다. 술을 주면 말을 잘 들으니 그 점을 이용한 것이죠. 돌아가겠다는 딸에게 음주 사실을 집에다 알리겠다며 니 부모가 너의 말을 믿을 것 같으냐고 회유하듯 협박까지 한 정말 나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다달이 200만원씩 치료비랍시고 받아 챙기고는 딸은 딸대로 노동을 시켜 부려 먹었다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딸은 말했습니다. “그런 일을 당하면서 집에 가겠다고 하면 엄마는 정신 차리고 오라고만 했지, 내 말은 전혀 들을 생각이 없었잖아요. 그래서 이 얘기를 할 수가 없었어요.” 딸에 대한 불신이 컸던 탓에 그 당시 딸이 사실대로 이야기했어도 저는 제 귀를 막아버렸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전보다 늘어난 딸의 음주와 기물파손까지 더해진 폭력성에 근심이 늘어갔습니다. 이대로 놔두면 알코올로 인해 또다시 건강이 나빠져 회복 불능 상태로 갈까봐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술과 격리시키려면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고 아들이 말했습니다. 그래야 정신을 차릴 거라고... 아무리 힘들고 긴박한 상황이 와도 이력이 남을까 정신병원에는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딸에게 애원도 하고 정신병원에 넣어버린다는 맘에도 없는 말로 겁도 주었지만 딸의 음주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지방의 국립 정신병원에 입원하러 간 날에는 딸이 혀를 깨물고 자살할 거라며 못 죽을 것 같으냐고 죽는 걸 꼭 보여주겠다며 펄펄 뛰며 협박까지 했습니다. 강제로 입원을 한 후 딸에게 면회를 갈 때나 올 때 흘린 눈물이 하도 많아서 나중에는 눈물샘이 말랐는지 슬퍼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약물치료를 받고, 술도 못 먹고, 병원에 있으니 정신은 돌아왔습니다. 정신병원이다 보니 여러 병명의 환자들과 병실에 뒤섞여 있었습니다. 정신이 돌아왔으니 본인은 얼마나 고통이었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딸은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정신 차렸다며 퇴원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이제 마지막이라고 단단히 약속을 하고 딸을 퇴원시켰습니다. 그때 마침 제가 근무하는 회사에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어 딸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에 혼자 있으면 혹시라도 술 생각이 날까봐 제 곁에 두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딸과 함께 출, 퇴근했습니다.

 

그러다 출근길에 우연히 딸 가방 안에 음료수병이 눈에 띄어 뚜껑을 열어보니 소주를 담아놓은 것이었습니다. ?무섭게 화를 내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며 출근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창고 안에서 만취해 쓰러져있는 딸을 발견했습니다. 술을 어딘가에 감추어놓고 마셨던 것이었습니다. 회사 동료들의 눈에 띌까 노심초사하며 죽을 힘을 다해 늘어져 있는 딸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합니다.

 

딸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배신감까지 더해져 나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엄마가 오랫동안 몸담아 근무하는 회사인데 엄마 얼굴 생각했으면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가 있는지 이 일로 인하여 더욱더 딸을 원망하며 분노로 지쳐 갔습니다.

 

회사에서 힘들게 근무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너무나 무거웠으며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제는 집에 들어오기가 두려워 주차장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이 현실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이 집에 딸이 없으면, 눈에 안 보이면 숨이 트일 것 같았습니다. 악취로 가득 찬 집안, 매일 술에 만취해 있는 딸! 과거에 딸이 살아났던 힐링센터에 다시 데려다 놓았습니다.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버거운 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딸의 회복과 내 생활의 평화를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는 없다고, 이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딸은 나름 잘 적응해 나가며 봉사를 하며 일을 열심히 해 직원으로 채용되어 정식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능한 센터 매니저로 원장님께 인정을 받아 귀한 원석이 여기 있다며 갈고 닦으면 훌륭한 보석이 될 거라고 신뢰하고 좋아하셔서 저도 악몽이 끝난 듯 안심이 되었습니다.

 

20개월가량 건강한 모습으로 잘 지내고 있던 딸이 집으로 오고 싶다고, 사회생활 잘 할 자신이 생겼다며 매일 아픈 사람들을 보는 것도 너무 힘들다며 애원하길래 정말로 이번에는 믿었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후 몇 개월도 안 되어 또다시 장취에 들어가게 됩니다. 다시 옛날의 악몽들이 되살아납니다. 집안은 다시 악취로 서서히 물들어 가고 어두움의 그늘에 갇히게 됩니다. 달래도 보고, 협박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없습니다.

 

힐링센터에서 근무하며 받은 급여가 통장 안에 있으니 술 먹을 돈도 충분하여 음주 사실을 들킨 후에도 이 정도는 문제없다며 기고만장하게 굽니다. 나한테 트집을 잡더니 다툼 후에 집을 나가 모텔을 잡아 장취에 들어갑니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해서 3일 만에 위치추적을 해서 찾으니 집 근처 모텔에 숙박비를 한꺼번에 지급하고 아가씨가 겁도 없이 혼자 모텔에 있다는 사실에도 놀랄 일인데 술에 완전히 절어 있었습니다. ?집으로 데려오려니 집에 안 오겠다고 막무가내입니다. 어디 있는지 알았으니 그나마 안도가 되어 혼자 터덜터덜 답답한 마음 가득한 채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일주일을 모텔에서 장취하다가 내가 애원하고 또 애원해 집으로 오라고 해 겨우 왔는데 소주 대병짜리를 사와서 나보는 앞에서 벌컥벌컥 마셔대는데 이제는 엄마도 안 보이나봐! 최소한 엄마라고 생각하면 이건 아니잖아! 어떻게 이런 짓을 해!’

 

식음을 전폐하고 오로지 술만 먹는 딸을 바라보며 이대로 가다가는 한 달도 못 넘길 것 같았습니다. 그래 이렇게 사람답지 않게 살 바에는 얼른 죽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서서히 자제력을 잃고 엄마의 모습을 지우고 분노로 가득한 악마로 변해가기 시작합니다.

나도 이제 너의 엄마이길 사표 낸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너를 완전히 포기한다. ?너는 사람 새끼가 아니라 괴물이다. ?네 아빠 술주정에 치를 떨었는데 네 아빠보다 더 나쁜 게 너라는 못된 년이다. ?정신이 썩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방의 구석구석 숨겨놓은 술병을 찾으니 플라스틱 대병으로 된 소주와 맥주가 여기저기서 나왔는데 그걸 딸의 머리에 차례차례 들이부었습니다.

! ! !

술은 딸애의 온 몸을 적시고 있었고 딸은 그걸 다 맞고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대야에 물을 가득 담아 여러 차례에 걸쳐 딸을 향해 들이부어 버렸습니다. ?방안은 오물과 함께 쏟아부은 술과 물로 인하여 질퍽질퍽해졌습니다. 딸이 악에 받쳐 소리 지르며 울기 시작합니다.

살고 싶은 생각 하나도 없으니 차라리 나를 죽여!!! 제발 죽이라구...”

그 말을 듣고 술병이 손에 잡히는 순간 사정없이 딸을 때리고 발로 차고 정신을 놓아버렸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기에는 도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뉴스에서나 나오는 그런 끔찍한 상황이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고, 지금 이 순간 자리를 피하지 않으면 극한 상황의 일이 벌어질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방안을 나와 손끝 하나 못 움직일 정도로 지쳐 쓰러지듯 누웠습니다.

 

젖은 이불과 방안을 치우고 이불도 갈아주어야 하는데, 몸도 목욕시키고 옷도 갈아입혀야 하는데, 이 세상에 의지할 곳이라고는 화만 내는 엄마뿐인데, 엄마라서 엄마 곁으로 왔는데, 갈 데도 없는데, 당장 나가라고 했으니, 불쌍하고 가련한 내 새끼!’

 

마음이 찌릿찌릿하니 아파옵니다. 그날 밤 마른 잠자리에 누운 나는 한잠도 못 자고 지새웠습니다. 그러면서도 괘씸하고 분한 마음이 더 컸기에 다음날 밝을 때까지 딸의 방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날이 밝아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마음을 다잡아 딸에게 갑니다. 역시나 안으로 잠긴 방문 고리를 강제로 재껴 열어보니 차마 두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방 안은 어제 쏟아 부은 술과 물로 인해 바닥은 질퍽하니 오물과 함께 젖어있는 이불 위에 잔뜩 웅크리고 만취해 잠들어 있는 딸의 처참한 모습이 보입니다. 딸에게 다가가 손을 대보니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갑습니다. 가슴이 찢어진다는 표현도 부족하리만큼 또 찌릿찌릿하니 고통을 느낍니다. 본인도 이런 자신이 힘들겠지만,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파옵니다. 딸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몸이 굳어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합니다. 내 손으로 몸을 잡아주어 젖은 이불을 걷어내고 한쪽으로 앉게 한 뒤 딸의 두 손을 잡고 애원하다 보니 눈물이 앞을 가리고 딸도 울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유나 좀 알자. ?엄마가 술을 안 먹어도 술 먹는 사람을 이해못하고 그렇지는 않아. 말을 좀 해봐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더니 고개를 아예 벽으로 돌려 버립니다. 다시 말했습니다.

너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엄마한테 말해봐. 무조건 도와줄게...”

딸은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내 두 눈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였습니다. 눈이 마주쳐 한참이나 정지된 상태였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재차 묻고 또 묻고 역시나 대답이 없습니다. 딸의 눈빛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를 무시하는 느낌이 들어 또 언성이 높아집니다. 딸이 제일 싫어하는 큰 목소리로 악을 쓰듯 말하고 있습니다. 좋게 얘기하려 했는데...

너는 엄마 말이 그렇게 우습니? 엄마를 완전 흑싸리 껍데기로 생각하고 있으니 개무시하고 이런 행동들을 하는 것 아니냐!!”

또 스멀스멀 분노가 치솟습니다. 울고 있던 딸애는 소리를 지릅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엄마는 알 수도 없고 이해를 절대 못해요!!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구요!!!”

딸의 대답이 이해가 안 되어서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얼른 옷부터 갈아입히고 대충 치워놓고 출근할 생각에 딸의 옷을 벗기다 딸의 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딸의 온몸을 구렁이가 감아놓은 것 같이 시퍼렇게 피멍이 들고 부어 있었습니다.

내 새끼한테 내가 무슨 짓을 한거야.. ’

내가 먼저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딸에게 말했습니다.

정말 미안하다... 엄마를 용서하지마라..”

험한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은 안 되는데 귀한 내 딸한테 이런 짓을 저지른 나는 너무나도 괴로웠습니다.

! 이건 아닌데... 이건 사람으로서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짓이야! 어쩌나! 어찌해야 하지?’

내 앞에 놓여있는 현실은 너무나도 기막힌 막막한 어둠뿐입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보니 딸이 보이지 않습니다. 휴대폰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온전치 못한 몸으로 길거리 다니다가 나쁜 사람 만나면 험한 꼴 당할 텐데 어찌해야 하나!’

또 애간장이 새까맣게 타들어 갑니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불안한 생각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전화를 계속 걸어봅니다. 술에 잔뜩 취한 채 잠들었는지 잠결에 제정신도 아닌 채 전화를 받습니다. 술에 취해 발음도 정확하지 않아서 천천히 여러 차례 물어보아야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딘지 모르겠어요..”

숙소를 잡아 있는 거면 방안이나 목욕탕에 수건 있을거야. 글씨 읽어봐.”

“XXX 모텔 XXX-XXXX ”

어눌하게 딸이 말합니다. 그곳으로 달려가면서 그나마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편안할 날 없이 근심으로 나날을 보내는 중에 나의 절친한 친구가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딸이 알코올 중독인 걸 알고 다사랑중앙병원이란 알코올 전문병원이 있는데 치료받아보는 게 어떻겠냐며 말을 꺼냈습니다. 친구 남편이 알코올 중독이 심해 다사랑중앙병원에서 알코올 치료 프로그램을 따라 교육받고 퇴원했는데 일 년이 넘어도 재발하지 않고 직장 생활도 성실하게 잘 하고 있다며 적극 추천해 주었습니다.

방안에서 저렇게 죽어 가면 살아있는 나는 마음이 아파 살 수가 없겠지, 어떻게 키운 내 새끼인데 포기를 할 수가 있어. 내 마음에 한이라도 없게 병원 치료를 다시 시작해 보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노후에 쓰려고 준비해놨던 종신보험을 해약하고 병원 치료비로 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해를 넘기며 치료하는데 많은 비용을 감당하느라 가정경제 여건이 어려워져 있었습니다.

혹시나 이렇게 살다가 내가 나쁜 병에 걸리면 난,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떠나면 되는거야! 어떤 미련도 갖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