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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다사랑 재활수기 공모전]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등록일 2021-02-09 조회수 394 이름 다사랑
첨부파일 2016환자회복수기_썸네일.jpg

[2016 다사랑 재활수기공모전 참가상]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OO

 

대체 날 왜 알코올중독자로 낳은 거야!! 왜 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거야!!"

 

차라리 나란 놈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숨을 쉬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도 싫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빛을 바라보는 것 또한 너무나도 싫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평범하게, 그저 평범하게 지내고 싶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외쳐대던 '제발 이런 나를 살려 달라'는 외침에도, 나의 손끝은 술을 갈구함에 내 자신을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다. 기나긴 장취 끝에 술에 젖어 마지막으로 울부짖어 외친 이 한마디는 어머니의 심장에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찢겼으리라.

 

한 생명이 나로 인해 세상의 빛을 마주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다는 깊은 죄책감. 이에 대한 믿음과 고통의 집착으로 시작된 알코올 중독이라는 10대부터의 기나긴 광야의 삶은 수많은 자살시도와 가출, 폭행, 자기 학대, 사랑이라는 탈을 쓴 집착적인 애착, 2000여만 원의 사채 빚 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표면적으로 드러난 살고자 발버둥치는 모순적인 행위일 뿐이었다. 그 뒤에 감추어진 외로움, 깊은 죄책감으로 인한 자기 존재의 부정, 억압된 분노와 수치심, 극심한 우울과 무기력들은 내 영혼의 심장을 날카로이 도려내어 그 자리에 암흑 같은 공허함을 새기고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아 제발 날 죽여 달라고 끊임없이 소리치며 살려 달라고 피눈물을 흘렸다. 중독은 이렇게도 모순적이고 이기적이다.

 

26살이 되던 20092, 이곳 다사랑중앙병원에 처음 입원한 후 2016년이 된 지금 이 순간까지 만 7년이 지났다. 여섯 번을 넘어지고 일어서는 과정 속에서 반복된 고통과 환희는 나라는 자아의 겉을 둘러싼 겹겹의 두꺼운 포장지를 뜯어내는 세월이었다. 상담사 선생님과의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통한 억압된 원한과 분노와의 마주침은 어린 시절 해결되지 않은 주관적 상처가 나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왔는지를 직면시켜 주었다. A.A.에서의 100일 작전과 12단계 프로그램의 직접적인 실천은 나의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게 해주고, 미래에 닿은 나의 시선을 지금 이 순간으로 이끌어주었으며, 마음 챙김 명상은 생각과 감정과 무의식에 무기력한 나를 바로보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지난 세월동안 여섯 번을 넘어졌다.

 

그래서일까. 마지막으로 입원했던 지난 2014929, 2인실인 606호에서 하신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에, 살고자 하던 의지와 용기에 허탈한 서늘함이 스며들어 칼에 베이는 아픔과 함께 고개를 숙인 채 눈물만 흘렸다.

 

널 왜 알코올 중독자로 낳았냐고? 네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냐고? 그 답을 찾아서 네 스스로 굳건히 일어설 때까지 너에겐 가족조차 없다고 마음속에 새기고 살거라. 더 이상 네겐 가족은 없다.”

 

어머니가 떠난 후, 나는 텅 빈 2인실 안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울부짖고 눈물만 흘렸다.

하느님, 대체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요"

 

이후 1년 반이 지났다. 지금 나는 모 사이버대학교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으로 4.3이라는 학점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올해 한 상담심리센터 인턴으로 최종 합격했으며 부모님과 남동생과도 너무나 따뜻하게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며 살아가고 있다.

 

고통은 언제나 나의 곁에 있었다. 아니, 내가 고통이라 여기는 것들은 항시 나와 함께 있었다. 삶의 물결에 자연스레 부딪히는 바윗돌의 출렁임에도 나는 쉽게 쓰러지고 쉽게 무너져왔었다.

 

이번 재활기간동안 수없이 내 자신에게 물었다.

, 진짜 알코올 중독자 맞니?”

너는 왜 살고 싶은 거니?”

 

지난 1여년이 넘는 재활기간 동안 수없는 물음표들에 대한 느낌표를 얻으려 자연스레 향하게 된 의지의 방향은 명상으로 향했고, 철학과 인문학에 대한 탐독으로 향했으며, 심리학의 여러 분야를 공부하며 나의 내면과 나의 행동을 교과서삼아 매 순간을 지켜보고 숙고하게 됐다.

 

나라는 인간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다. 내가 바라보는 사람들마다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무의식적인 판단과 비교 속에 그 사람들을 세워놓았다. 내 눈으로 들어오는 상대방의 모습에는 나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게 덧씌운 여러 겹의 색안경에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했으며, 이것은 물건이나 음식과 같은 사물이나 형태가 없는 대상 등 나의 외부에 있는 모든 것에 동일하게 작용했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색안경을 낀 내 시선의 대가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감정에 묶여 죄 없는 감정이란 아이에게 합리화시키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 나의 가치에 합리화시키고, 합리화시킨 가치에 포장된 대상에 투사하며 이런 것들이 다 옳다고 고집을 피우며 술을 마셨다.

 

많은 이들은 이야기 했다. 감정 때문에 마셨다고, 또는 나도 모르게 마셨다고.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과거 어느 시점에 벌어진 사건에 나의 생각과 감정이 반응하고 이끌려 나도 모르게 술잔을 잡았다고 이야기해왔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니, 적어도 나만큼은 아니었다. 언제나 내가 먹고 싶어서 마셨다. 나도 모르게 술잔을 잡아 마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마치 나는 학습심리학에 나오는 '파블로프의 개'와도 같았다. 나중에는 종소리만 들려주어도 침을 질질 흘리며 식욕에 대한 생리적 반응을 보이던 그 개와 같았다. 나는 화가 나거나, 누군가와 헤어져 마음이 슬프고 우울하거나, 외롭거나, 사회에 대한 불만 또는 현재 내가 속한 조직 안에서의 갈등 등이 내게 여러 가지 감정들을 일으키면 머릿속에 오늘 하루는 술로 풀어야겠다는 무의식적인 반응으로 매일 밤을 맞이했고, 나중에는 24시간 내내 그러했다.

 

너무 허무했다. 내가 개와 같다니, 정말이지 다를 것이 하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다고, 더 이상 힘들고 싶지 않다고 외치는 추동의 힘이 흘렀다.

 

병원에 입원한 많은 이들이 병원에서 나가고 싶어한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이 힘든 상황이라 여긴다. 나 또한 그러했다. 또한 수없이 알코올에 무력했다고 1단계를 외쳐도, 알코올 중독자인 자기 자신의 모습을 실은 무의식의 깊은 수준에서는 부정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나의 질병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알코올 중독자로서의 삶이 고통스러울 이유가 없었다. 내가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알코올 중독자라는 사실에 나는 더 이상 술을 마실 수 없다는 것과, 이로 인해 내게 덧씌워진 것으로 여기는 낙인에 대한 앞으로의 삶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은, 나는 술을 한 잔이라도 목으로 넘기기 시작하면 그게 언제가 되었든지 결말은 죽음으로 향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말은 나는 분명히 알코올에 무력한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것이었으며, 이 사실은 앞으로 내가 인간답게 살아가고 싶다면 더 이상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내 자신에게 다시 물었다.

, 정말 인간답게 살고 싶은거니?’

 

나는 술을 마시던 지난 시절동안에도, 가슴 시리도록 부모님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내 동생이 나를 든든한 형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싶었으며, 가족이란 굴레 안에 나 또한 일원이 되고 싶었고, 미소를 지으며 매일 아침 햇살을 마주하고 싶었고, 미래에 결혼을 할 수 있다면 따스함으로 나의 자녀를 감싸고 나의 아내에게 책임을 다하는 그런 삶을 나도 살아보고 싶었다. 이젠 진심으로 인간답게 살고 싶은 소망이 간절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술로 이끄는 원인과 근본을 정확히 보아야 했다.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것이 정말로 맞는지 스스로 물어보고 내 안의 인지적인 오류들을 끊임없이 바라보았다.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감정이란 물결의 허상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원내와 원외 재활을 하며 수없이 마주한 갈등들 속에서, 그리고 병원 밖에 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들 속에서 일어나는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자각하고 바라보았다. 어떤 때는 그 생각과 감정에 이끌려 화를 내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요구하기도 하고, 고집을 피울 때도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았다. 붓다가 이야기하던 삶은 고해라는 진리를, 삶은 고통이라고 이야기하던 그 진리를 깊이 깨닫고 싶었다.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자각하며 살며 나의 생각과 감정에 이끌리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다면, 술로 이끄는 내면의 추동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난 심리학을 선택했고, 많은 철학적 질문의 책들과 인문학적인 탐구를 위한 책들을 읽어왔고, 매 순간 자각하는 명상의 훈련들을 해왔으며, 무엇보다 운동을 꾸준히 하려 했다.

 

A.A.에서는 이야기 했다. 판단하지 말라. 비교하지 말라. 하루하루에 살라.

나의 세계관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판단하고 비교하며 다가오는 생각과 감정에 붙들려 살다보면 어느 순간 나는 다시 술잔을 잡고 있을 것이고, 하루에 살지 못하고 과거에 붙들려 살거나 미래에 붙들려 산다면, 또다시 그에 따라 다가오는 생각과 감정에 어느 순간 나는 술잔을 잡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불완전한 인간인 나는 고통이란 영양분으로 신이 내리는 햇볕 아래 세상이라는 수분을 흡수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제 내겐 고통이란 단어는 인간이 만들어낸 의미에 따른 표상일 뿐이며, 알코올 의존증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는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온전하고 평온히 살아가지 못한다면 죽음으로 간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기도한다.

 

하느님,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어쩔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고,

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자각하며 겸손히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